김희윤의 '시네한수' - 무시무시한 '실감' 담기, 돈과 사람목숨을 함께 건 승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장면연출을 위해 영화감독은 부단히도 궁리하고 연구를 거듭하지만, 상황에 따른 배우 연기를 입맛대로 컨트롤 하는 일은 노련한 중견 감독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자 지상난제다. 관객에게 '실감'을 전달하기 위해 대역 없이 액션에 나서는 배우의 과감한 도전이나 최고의 한 컷을 얻기 위해 수십 번 테이크를 반복하는 감독의 결기는 영화가 실제의 모사가 아니라 재현 또는 현현임을 가능케 하는 각고의 노력이지만, 때론 카메라 뒤에서 배우의 목숨을 담보삼아 실감 그 이상의 현장을 만들어내려는 감독의 객기가 투영되기도 한다. 일본영화계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욕망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다시 본다면 간담이 서늘할 장면들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빗줄기처럼 날아든 '진짜 화살'
구로사와 감독의 17번째 영화 '거미집의 성'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일본 센고쿠 시대 사극으로 재해석한 음산한 드라마로, 서사 전반은 맥베스를 충실히 따라가나 결말은 맥베스에 해당하는 와시즈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각색됐다. 배신자의 최후를 배신으로 매조진 구로사와는 와시즈의 죽음을 보다 공포와 광기어린 장면으로 연출하고 싶었다. 본격적인 촬영을 앞두고 화살의 방향, 무엇보다 와시즈 역을 맡은 미후네 토시로의 동선이 충분한 리허설로 준비됐을 때 감독은 액션을 외친 뒤 미후네를 향해 궁사로 하여금 진짜 화살을 쏘게 한다.
사람만 맞는 화살이 아닌 데다 빗발처럼 쏟아지는 화살이 벽에 빼곡히 박혀야 하는 장면, 구로사와 감독은 실제 화살을 심지어 공기압축기를 써서 확실하게 벽에 박히게 한 뒤 수백 발을 쏘아댔다. 사정을 모르는 미후네 토시로의 연기는 (물론 그는 이미 훌륭한 배우였으나) 죽음에 대한 공포, 이를 피하기 위한 처절한 몸짓을 오롯이 담아냈다.
'바주카포로 감독 쏴 죽일 것' 엄포
미후네는 이미 촬영 전날 화살을 쏠 궁사가 전문가가 아니라 제자인 궁도부 학생들임을 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잠을 설친 뒤였고, 촬영 당시엔 와이어에 연결된 화살이 최후엔 와시즈의 목을 관통하는 '장치'만 굳게 믿고 있던 터라 카메라 바로 옆에서 수백 발의 화살을 쉼 없이 쏘게끔 지시한 감독의 '컷' 사인이 끝나자마자 구로사와를 향해 "나를 죽일 셈이냐!"며 거칠게 달려들었다.
스태프의 만류로 귀가한 뒤에도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던 미후네는 그길로 집에 있는 산탄총을 들고 구로사와 감독의 집에 들이닥쳐 똑같이 당해보라고 길길이 날뛰었는데, 이후 그는 술만 거나하게 취하면 칼을 들고 구로사와가 묵는 여관으로 달려가 죽여버리겠다고 왕왕 고함을 쳐 감독을 꼼짝 못 하게 했는가 하면, 사석에서 농반진반으로 "구로사와 놈, 그 자식은 바주카포로 죽여 버릴 거야"라고 엄포를 놔 감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훗날 그는 "구로사와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간 내가 죽으리라 생각됐다"며 당시 자신이 느꼈던 공포와 분노에 대한 회고로 자신의 난동(?)을 해명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히
배우의 완벽한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실제 활쏘기도 불사했던 구로사와는 영화 전반에 걸쳐 완벽주의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한편 막대한 제작비를 소모하는 '일본 영화계의 천황'으로 군림했고 그런 성향은 그의 영화를 둘러싼 곳곳에서 드러났는데, 영화 '붉은 수염'에선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 약장 안쪽에 옻칠이 돼 있었는가 하면 '라쇼몽' 촬영 땐 높이 20M에 달하는 대형 문을 건설하고, 문 위에 얹을 기와에는 영화 속 배경 연호인 '延曆十七年' 무늬를 새겨 4,000장을 구워냈지만 영화엔 그 기와가 한 컷도 잡히지 않았다. 그의 이런 완벽을 추구하는 심미안은 영화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내 조달이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고, 이에 굴하지 않는 구로사와는 이후 해외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꾸준히 작업해나갔다.
공들여 지은 성을 불태워라
그의 마지막 시대극 영화 '란' 연출 당시에는 주인공 히데토라의 성채를 직접 후지산 기슭에 세트로 지은 뒤 촬영 말미 대규모 전투 후 성이 불타는 장면에서 실제 세트에 불을 내 과감하게 태워버렸다. 당시 4억엔(약 40억 원) 을 들여 지은 세트였지만, 히데토라를 연기한 나카다이 타츠야는 (이번엔 한층 더 강력해진!) 실제 날아드는 불화살 사이를 헤치고 화염에 휩싸인 성채를 나서는 연기를 과감하게 펼쳐 인생의 역작을 만들어냈고, 구로사와 역시 불타는 세트를 아까워하긴커녕 자신이 카메라에 담아낸 '인간 욕망의 허무'에 전율했다.
잇달은 아들들의 배신에 끝내 정신을 놓아버린 히데토라의 캐릭터를 두고 구로사와는 나카다이에게 "일부러 미친 척하지 말고 쓸데없이 소리 지르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광기와 업보의 '실감'을 위해 그는 과장된 연기가 아닌 자신이 만든 온전한 상황을 통해 장면을 통제하고자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란'은 그의 일생의 사업이자 '인류에게 보내는 유언'이 됐다.
감독 구로사와가 영화계에 입문했을 때 일본은 전쟁이 한창인 악인들의 세상이었다. 그는 원자폭탄과 함께 종지부를 찍은 전쟁 속에서 자신이 목도한 인간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영화를 통해 확장시켜 나갔고, 마치 끝을 보고 온 사람처럼 촬영 현장에서 배우에게, 스태프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혹독하게 굴어 기어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에도 단 하루, 촬영을 쉬고 장례를 치른 뒤 이튿날 태연히 현장에 돌아와 메가폰을 잡던 그에게 가족의 죽음이나 배우의 안위, 세트에 들어간 돈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건 실제를 압도하는 '실감'의 연출이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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