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있었어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남녘 대도시의 달동네 슬레이트 지붕집. 두 발 뻗으려면 가방 짐을 한 편으로 밀어야만 했던 작은 방 바로 옆, 소녀가 살았지요.
시골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는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도회지로 나와 섬유공장엘 취직했지요. 달동네 슬레이트집에서 비탈진 길을 한 동안 내려가면 다다르는 아주 큰 공장이었어요. 그 공장의 같은 반, 같은 조에서 근무하는 한 살 위 언니가 바로 소녀의 다정한 룸메이트였지요, 비록 작은 방이었지만.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어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 대도시였지만 달동네는 상수도가 아직 연결되지 않았어요. 우물가에서 세수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일이 예사였지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소녀는 무더운 여름밤이면 우물가에서 목욕도 했지요. 쏴아. 오밤중에 두레박 물 붓는 소리가 나면 방문 밖을 나서지 못했어요. 소녀가 창피할까봐. 그렇다고 매일 있던 일은 아니지요. 고작 일요일에나 한 번 정도? 평일에는 저녁 6시까지의 고된 공장 일, 다시 밤 10시까지 부설 야간학교에서의 지친 공부에 목욕할 겨를이 없었을 거예요.
소녀의 하루는 한결같았어요. 아침이면 6시 반 기상, 7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면 수선을 떨며 방을 나섰지요. 어김없이 밤 10시 20분, 소녀가 귀가하면 마치 순서가 정해진 것 마냥 소리가 들렸지요, 짤깍 자물쇠 여는 소리, 스르륵 미닫이문 여는 소리, 사뿐 가방을 내려놓고 라면 봉지 뜯는 소리, 휴대용 가스레인지 물 끓는 소리, 양은냄비 바닥을 긁는 달그락 젓가락 소리…. 종종 소녀와 언니 간의 대화도 들렸지요. 공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느 남자애가 눈길을 던졌는지 그리고 다음 월급날까지 얼마의 돈으로 버텨야 하는지….
그랬지요, 소녀와 저 사이에는 비밀이랄 것이 따로 없었어요. 달동네 슬레이트집이잖아요. 두 방의 사이에는 얇은 베니어합판 한 장에 덕지덕지 덧바른 벽지 정도가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굳이 듣고자 하지 않아도 모든 소리들이 다 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던 하루였지요. 밤 10시 20분이 되어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어요. 10시 30분이 되어도, 40분이 되어도 그랬지요. 그리고 11시가 넘은 시각, 거칠게 방문이 열리고, 털썩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잇달아 들려온 "언니, 우리 부모는 왜 나를 낳았을꼬?"
적막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 베니어 벽 너머의 저는 그만 무엇도 할 수 없었어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어떤 생각조차도. 그래요, '정의사회 구현' 구호 아래 1인당 국민소득 3천불 시대, '마이홈, 마이카' 꿈이 넘쳐흐르던 시대였잖아요.
30년이 지났어요.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내다본다는 지금, 그 소녀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며칠 전의 광화문 광장, '이곳 광장에 서면 이 나라의 주인임을 느끼지만, 공장으로 돌아가면 소외감을 느낀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를 듣고서 그 소녀의 울음이 생각났어요. 달동네, 우물이 있던 슬레이트집의 그 소녀가 생각났어요. 모처럼의 휴무일이면 달빛 비친 우물에서 목욕물을 긷던 소녀. 잘 지내고 있을까요? 정말 잘 지내고 있을까요?
최강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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