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은행들이 자산관리(WM)서비스 대상이 되는 'VIP' 기준을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습니다. Sh수협은행은 기존 1억원 이상이던 기준을 올해부터 '2000만원'으로 파격적으로 조정, 고객 확보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KB국민·우리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도 3000만원까지 문턱을 낮췄습니다.
은행들이 일부 고액 자산가만 받을 수 있었던 WM서비스를 더 많은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취지는 환영할 만합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고객들 관심도 뜨겁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프리미엄 서비스의 대중화'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고객만 늘린다면, 심층적 개별 자산관리가 아니라 결국 다시 '매스서비스'가 돼버리기 때문입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고객이 늘어나는 만큼 프라이빗뱅커(PB) 수가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기존 고객의 반발도 사게 될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덩치 경쟁은 은행들의 '고질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 내수 기반으로 성장해 온 은행산업은 그 흥망성쇠의 역사가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금리차)을 놓고 벌여온 파이싸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미래는 다릅니다. 이제는 덩치가 아니라 '수익성, 효율성'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최근 모 은행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판매액이 금융권 처음으로 1조를 넘었다'며 자화자찬 발표를 했는데, 해당 은행의 ISA수익률을 살펴보니 중ㆍ저위험 상품에도 마이너스 수익률이 속출했습니다. 고객이 맡긴 돈은 가장 많았으나 수익률은 가장 저조했던 셈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자이익을 넘어 새 수익원을 창출하려는 은행들의 노력은 힘겹습니다. 전문 서비스를 대가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WM부문은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습관적인 외형 경쟁에 몰두해 '자산관리의 본질'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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