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오후 한 詩] 봄의 정치/고영민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3초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얼음이 풀린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고
 떨지도 않고 걷는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
 따뜻한 눈송이들
 지난겨울의 노인들은 살아남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단히 감고 있던 꽃눈을
 조금씩 떠 보는 나무들의 눈시울
 찬 시냇물에 거듭 입을 맞추는 고라니
 나의 딸들은
 새 학기를 맞았다

 

[오후 한 詩] 봄의 정치/고영민
AD



이상한 일이다. 지난겨울이 삼 년, 아니 한 십 년 전처럼 느껴진다. 가까이 지내는 몇몇에게 슬쩍 물어보니 그들 또한 그렇다고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지난겨울이 정말 있기는 있었나 싶기도 하단다. 비록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이 파면되고 그래서 세상이 조금은 나아진 듯도 하지만, 그만큼 지난겨울은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참담했다는 뜻 아닐까. 그래, 지난겨울엔 "바람"조차도 "상처"였다. 그러나 그래도 봄은 온다. 그리고 왔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봄이 문득 왔다. 믿어야 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우리 사는 세상 또한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차츰차츰 나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일구는 "봄의 정치"일 것이다. 아이들이 그러하듯 우리 또한 이제 "새 학기를 맞았"지 않은가.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