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연정'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특히 안 지사는 민주당 대선후보 등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연정'을 언급한 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보수ㆍ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환호를 보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유한국당을 적폐로 규정한 민주당 지지층은 강하게 반발했다.
안 지사는 지지율이 폭등한 뒤 급락하는 식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지지율이 오를 때는 민주당 지지층에 중도ㆍ보수 지지층이 합쳐져서였고, 지지율이 떨어질 때는 민주당 지지층도, 중도ㆍ보수 지지층도 등을 돌려서였다. 안 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쪽 모두로부터 의심받고 있지만, 양쪽 모두로부터 의심을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희정 캠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무총리와 국무회의는 의회 다수파, 즉 과반을 점하는 정당연합에 의해 공유되도록 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대통령과 총리, 여당과 야당의 협치를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안 지사는 지난 2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 주최 토론회에서 "차기 정부를 이끌게 된다면 당의 연정추진체를 통해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내세웠던 국가개혁을 위한 약속에 대해 각 정당의 구체적 약속을 놓고 어떠한 범주까지 연합정부를 꾸릴 세력을 모을 수 있는지 구체적 전략을 논의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팩트체크= 안 지사는 그동안 '대한민국 헌법 자체가 협치하라는 명령'이라고 주장했다. 집권당이 다수당이 아닐 때 헌법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연정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학계에서는 연정을 헌법 정신과 연계시키는 데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과 국회의 협조는 정치권이 안정되고 제대로 굴러가는 데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공동정부, 연정을 헌법에서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연정은 헌법정신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현실적 필요성이 있을 때 정당 간 필요 때문에 하는 것이지 과반 정당 이뤄지지 않았을 때 (헌법이) 연정 등의 형식으로 협치를 할 의무를 부과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헌법은 권력을 좋은 의미로 보기보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의미가 강하다"면서 "연정을 한다는 것은 여당과 야당이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 경우 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헌법학자는 "정당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런 차이를 덮어 놓고 권력을 나눈 것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타협하는 정치문화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연정은 한국 정치의 구원을 가져올 수 있을까=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 상황 때문에 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원내정당은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에서 180석 이상의 의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줄곧 제기됐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대표의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된들 화합을 위해서는 정치권이 어느 정도 연합하는 형태의 정국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면 많은 입법이 필요한데 그 입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회 선진화법을 고려할 때 180석 이상의 의원들을 규합할 수 있는 그런 혁신체제, 협치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다음 정권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연정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양극화되고 대립해 시민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시대정신은 연정이나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을 떠나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가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을 보면 점점 이념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져 이런 구조에서 해결책은 협의와 협력 없이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가장 의석이 많고 지지율이 높은 민주당이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의회에서는 과반을 구성할 수 없다"면서 "연정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민주화 이후 정당 간 연합을 통하는 방법보다는 국회의원을 빼 오는 방식으로 해왔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현 가능성은= 연정이 실제 구성되더라도 이것이 구체적으로 작동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각각의 정책 사안마다 이견이 발생해 연정이 깨질지 모른다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가 교수는 "정당의 능력 있는 정치인이 협력하고 설득의 정치를 하는 것이 연정의 아름다움"이라며 "정책 각각의 사안 때문에 연정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연정의 큰 목적에 비해 부분적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연구원은 "(우리나라 정치사를 볼 때)정당들이 연정에 훈련이 안 된 상태기 때문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면서 갑자기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공동정부, 정책연합, 선거연합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자기 정당의 정책적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어디까지 협상할 수 있고 어디까지 협상할 수 없는지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서 연구원은 "선거 때 후보자를 공동으로 지명할 수 있게 해주는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당제 연합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공동의 정부를 구성하다 서로 안 맞으면 헤어지고 다른 짝을 찾아 연합한다"면서 "특정 세력과 연정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지사가 주장하는 대연정 논란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구체적인 전략이 빠진 점이라고 지적했다. 서 연구원은 "연정은 일반론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놓고 연합을 할 수 있는지 전략적인 문제"라면서 "안 지사의 경우 꼬이는 부분은 2017년의 시점에서 어느 정당하고 정부를 구성하고 어느 정당하고는 정책연합을 하고 어느 정당과는 못 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개혁 어젠다에 동의한다면 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지금 시점에서는 그 당이 동의하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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