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하이에나처럼 험악해지는 시절이라 했다
물고 덜어 내고 되세우는 도시의 굉음 속
낮은 목책은 치장일 뿐
요즘 와 말이 슬쩍 나갔다 돌아오곤 한다
어떤 말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 말이 처음 눈뜨던 광야가 있었다
그곳에 가면 내 말이 있을 것이다
풀을 뜯고 초원을 달릴 것이다
야생의 눈빛으로 더 먼 곳을 내다보며
믿진 않았지만 휘파람을 불었다
거짓말처럼 멀리서 흙먼지를 풀며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
모래의 길 하나를 끌고 내 말이 돌아오고 있다
세상을 짚어 본 눈빛은 깊고 넉넉하리라
정강이가 튼튼해진 문장, 말의 관절이 유연해 보인다
■ 시인이 제목에 적어 둔 바와 같이 이 시에서 '말'은 '언(言)'과 '마(馬)'라는 두 갈래의 뜻을 함께 안고 있다. 그렇긴 한데 시집의 첫 쪽에 실린 시라는 점을 염두에 놓고 보자면, 아무래도 '마'보다는 '언'에 그 본뜻이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첫 문장부터가 그렇다. "말들이 하이에나처럼" 자꾸 "험악해지"기만 한다. 그리고 어떤 말은 "슬쩍 나갔다 돌아오곤" 하지만 애초와는 무척 달라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말은 나가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어린 말이 처음 눈뜨던 광야"를 불러온다. 물론 "야생의 눈빛"으로 가득하던 그 "처음"의 "어린 말"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시인이라면 시안(詩眼)이 비로소 트이던 그 시절의 언어이겠지만, 어떤 이에겐 처음 '개나리'나 '진달래꽃'을 발음하던 봄날일 것이고, 혹은 짝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혼자 부르던 노래의 어느 마디일 것이다. 궁금하다. 내겐 어떤 말이 그러했을까? 그리고 그 말은 지금 내게 "깊고 넉넉"한 "눈빛"이 되었을까? 오늘 하루 오래 생각해 볼 숙제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