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최근 중소기업계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법제화' 이야기가 나왔다. 중소기업계가 정부와 국회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건의사항 중 하나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쉽게 얘기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영역이다.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영역 진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3년간 대기업은 해당 업종의 신규 진출과 확장이 금지된다. 이후 재논의를 거쳐 3년간 연장할 수 있다.
현재는 법적 근거가 취약해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가 이뤄지면 보다 강력한 규제가 가능해진다. 중소 상공인들에게 꼭 필요한 법이다. 중소기업계와 국회 등을 통해 특별법 제정 등 법제화 노력과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법제화 추진을 놓고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의 존폐 문제가 불거졌다. 법제화가 되면 동반위 조직이 필요없게 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계 관계자의 말은 이렇다. 적합업종 법제화 자체가 정부가 직접 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해야 한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정부 위원들도 구성되면 민간 동반위의 조직이나 활동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최근 중소기업부 신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도 민간 동반위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중소기업청이 '부'로 격상되면 규모나 역할이 커진 만큼 조직 내에 상생협력실 등을 만들어 현재 동반위가 하고 있는 업무를 맡으면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동반위 해체'라는 의미다. 그동안 동반위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된 상황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동반위는 2010년 12월 출범했다. 그동안 동반성장지수 산정과 공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기준 마련과 합의ㆍ점검 등의 역할을 해왔다. 출범 초기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초대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강력한 리더십과 네트워크로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새로운 위원장들을 거쳐가면서 성장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예산 확보 문제와 신임 위원장 선임 문제 등 내외부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또 총리까지 역임한 정 전 위원장의 거침없는 활동과 달리 학계에 주로 몸담았던 다른 위원장들이 동반위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110개 품목 중 절반이 넘는 67개 품목의 권고기간이 만료된다.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소 상공인들의 경영과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동반위가 2011년도부터 자율권고ㆍ합의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적합업종은 제조업 88개, 서비스업 23개 등 총 111개 품목이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민간기구인 동반위가 합의 도출과 공표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세부절차와 이행수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취약해 강력한 규제가 어렵다. 법제화가 꼭 필요한 이유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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