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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시대의 고통을 피해 떠도는 평범한 인간상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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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기념 간담회

김훈 "시대의 고통을 피해 떠도는 평범한 인간상 그렸다" 소설가 김훈이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터에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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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나의 소설엔 영웅이나 저항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의 하중을, 그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도망 다니고 미치광이가 돼 세계의 바깥을 떠도는 그런 인간들을 그렸습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뛰어난 작품들로 한국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 김훈(69)이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출간했다. 이번 신작은 1994년 문학동네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실으며 등단한 작가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이자 2011년 10월 출간한 '흑산'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간이다. 소설은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살아간 아버지와 그 아들들의 삶을 주제로 한다. 또 현대사를 장식한 각 사건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그 안에서 그저 버텨내야 했던 인물들의 상황을 빠른 속도로 보여준다.


김훈은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이번 소설은 제가 살아온 시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나의 아버지는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1910년, 나는 대한민국 수립이 선포된 1948년에 태어났다. '1910과 1948'이라는 두 숫자가 우리 부자의 생애에 운명적인 좌표처럼 찍혀 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터에서'는 마씨(馬氏) 집안사람들이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군부독재 등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과정을 따라 밟는다. 잇달아 벌어지는 비운의 사건들은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두 아들 마장세·마차세의 삶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다.


소설에 묘사된 마씨 일가의 생애에는 김훈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상당 부분 가미됐다. 작가의 부친 김광주(1910∼1973)는 마동수와 살아온 시기가 거의 겹치고 일제강점기에는 김구 휘하에서 항일운동을 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신문기자이자 소설가로 일한 김광주는 상하이 남양의과대학을 다녔는데 작중 마동수도 상하이로 건너가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마차세가 군복무를 마친 뒤 복학하는 대신 경제전문 주간지 기자로 취업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고려대 영문과를 중퇴하고 기자로 일했다.


소설 제목인 '공터에서'는 주택과 주택 사이 버려진 땅 공터, 마치 끊임없이 헐리는 가건물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인물들의 비애를 떠올리며 지었다고 한다. 또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이자 책 표지 사진에도 등장하는 말은 작가가 부친을 보며 '늙은 나귀 같다'고 생각한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작가는 "나의 아버지나 나나 그 시대의 피해자였다. 결코 도망갈 수 없는 한 시대의 운명이 전개되었던 것"이라면서 "세상은 무섭지만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고, 우리 부자가 겪은 시대의 야만성과 폭력성,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의 삶을 모자이크로 엮었다"고 했다.


소설은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사여구 사용이 절제된 김훈 특유의 건조한 문체다.


"마동수는 1910년 경술생(庚戌生) 개띠로, 서울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吉林), 장춘(長春), 상해(上海)를 떠돌았고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625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69세로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박정희는 5, 6, 7, 8, 9대 대통령을 지냈다. 박정희는 심장에 총알을 맞고 쓰러져서, '괜찮다, 나는 괜찮아……'라고 중얼거렸다. 마동수의 죽음과 박정희의 죽음은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관련이 없다. 마동수의 생애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다."


김훈의 시선은 시종일관 아주 짧은 시간 스치듯 사건을 관통해나간다. 이에 대해 작가는 "스냅사진 또는 크로키 데생 같은 문장 기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역사 전체를 다 총괄할 순 없는 자로서 어떤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려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버리는 스냅방식으로 글을 썼다"면서 "마치 필름을 빨리 감는 것처럼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은 잘라내는 식이었다"고 했다.


작가는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그 신산스러운 삶을 서늘한 시선으로 고찰한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


작가는 "소설의 등장인물은 이념이나 사상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희망이라는 것은 아주 조금밖에 말하지 못했다. 아주 사소한 것 속에 들어있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말하다가 미수에 그친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나는 생활의 바탕 위에서 이념과 사상이 건설적으로 전개돼야 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명석한 전망이나 희망을 개시하지는 못했다. 이는 다른 작품에서도 보이는 나의 한계"라고도 덧붙였다. 또 스스로 협소한 시야와 세계관을 가진 이라고 평가한 뒤, 한국 현대사 전체에서 이번 소설에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며 아쉬워했다.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문사 퇴사 후 전업 소설가로 살아왔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 '내 젊은 날의 숲', '공무도하, '남한산성, '흑산', 소설집 '강산무진' 이 있고, 에세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문학기행 1, 2(공저)' 등이 있다. 이중 '칼의 노래'는 드라마로, '현의 노래'는 국악극으로 공연됐으며, 단편소설 '화장'은 2014년 영화로 제작·상영됐다. 2007년 발간된 장편소설 '남한산성'은 현재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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