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사퇴 변수로 전통적인 '여-야' 구도가 아닌 '야-야' 대결 국면으로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출마 자체가 불확실한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를 제외하면 여권 내 후보들의 지지율이 지리멸렬한 상황이라 야권 후보 간 경쟁 구도가 치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론조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위, 반 전 총장이 2위를 차지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대선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최대변수로 꼽혔던 반 전 총장이 실제 판을 흔들지도 못한 채 대선판을 떠남에 따라 문 전 대표의 독주체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사퇴로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은 야권 내에서 오히려 강한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문 전 대표의 경우에는 중도, 보수층 지지확장에 있어서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반 전 총장을 지지했던 중도, 보수층의 지지를 안희정 충남도지사나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가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불안하게 생각하시는 거부세력들이 많다"면서 "이분들이 국민의당 후보에게 몰려올 것으로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문재인-안철수'의 맞대결 구도라면 해볼만 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안 지사가 최근 지지율 등에서 괄목할 성과를 보이는 부분도 위협적인 대목이다. 더욱이 안 지사의 경우 반 전 총장 사퇴 이후 '충청 대망론'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야권의 한 인사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로 인해 야권 내 최대 수혜자는 안 지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지사는 본격적인 대선 행보 이후 지지율이 빠르게 상승한 데 이어 충청권의 지지가 몰릴 경우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의 핵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안 지사는 2일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캠프를 본격 가동하는 등 대선 행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위기감에 따라 보수 후보 간의 대단결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지지율 2위를 달렸던 반 전 총장의 사퇴로 야권연대론이 추가 동력을 얻을 지 여부도 관심사다. 현실적인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야권 공동 후보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든 탓이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이번 대선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 간의 대결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야권 내 2위 자리를 놓고 안 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안 전 대표가 치열한 자리다툼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구도가 이같은 구도로 갈 경우 야권 내 중도 보수층에 대한 확장력이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도 크다.
국민의당은 그동안 중도를 표방하면서 중도와 보수 지지층 확보에 공을 들였다. 안 지사도 중도와 보수층을 껴안는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반 전 총장의 급작스러운 대선 불출마로 인해 안희정 대 안철수의 대결 국면도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떠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탈당설이 끊이지 않는 민주당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선택이다. 실제 탈당을 감행해 안 전 대표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과 연계할 경우 야권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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