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장위동 하얀 돌담집, 주민공동시설로 재탄생
프랑스 망명 '사회참여형' 건축가 …유신정권 도시정책 공개비판
작고 30년, 도시재생사업 보존 …작은도서관 ·작품홍보관 활용
[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집은 노래불러야 한다. 꿈이 있고 시가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다웁게 모여 살고 싶어져야 하잖은가."-건축가 김중업
대한민국 건축거장 고(故) 김중업 선생(1922~1988)은 서슬퍼런 유신정권 시절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사회참여형 건축가였다. 와우아파트 붕괴, 청계천 주민 성남 강제이주 등을 두고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면서 프랑스로 망명을 가야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 사사받은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인 그는 주한프랑스대사관, 삼일빌딩, 육군박물관 등 굵직굵직한 작품 외에도 서울 곳곳에 단독주택을 남겼다. "집은 아름다워야 하고 정성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그의 주택 작품은 작고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230-49 일대에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이 그 주인공이다.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해제된 이 일대에는 2015년부터 노후주택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하얀 담벼락에 둘러싸인 이 주택은 1970년에 지어져 장장 50년 가까이 묵었지만 1986년 김중업 선생의 손으로 리모델링을 거친 덕분에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서울시와 성북구청이 지난해 9월 14억800만원을 주고 매입하기 전까지 사람이 거주했다. 당초 김중업 선생이 설계까지 했다는 추측이 있었지만, 설계도면을 찾을 수 없어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는 사실만 확인이 됐다.
주택 내부에선 김중업 선생의 건축 언어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회나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꾸며진 창문과 육군박물관에서 썼던 삼각타일, 외벽에 붙여만든 온실, 400년 된 대추나무가 있는 정원, 곡선을 그리는 창틀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그의 흔적이 발견됐다. 1980년대만 해도 리모델링을 '집수리' 수준으로 치부해 유명건축가가 작업을 하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의미가 더해진다. 그의 제자들은 이 집의 과거 소유주가 김중업 선생의 큰 형인 서예가 고 김광업 선생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김중업 선생의 수석제자로 자문단으로 활동 중인 곽재환 건축그룹 칸 대표는 "뼈대는 그 당시의 전형적인 주택 모습이지만 세세한 곳에서 선생님의 건축언어가 발견됐다"며 "온실이나 홈통 등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 주택은 현재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으로 이름이 붙여져 매주 금요일 주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주민공동시설'로 사용하기로 결정이 됐으며 곽재환 대표가 포함된 자문단이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최대한 보존하면서 작은도서관이나 작품홍보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개방된 주택을 본 주민들이 집에 아름답다고 보존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어 내부만 손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김중업 선생은 현재 카페로 이용되고 있는 연희동 주택외에도 방배동, 한남동, 장충동 등 서울 곳곳에 10개 안팎의 주택을 설계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에서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일부는 이미 철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국의 현대건축사를 관통하는 김중업 선생의 작품들은 충분히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도시재생의 한 축으로 보존을 하면서도 살아있는 공간으로 활용을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