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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놓인 ‘슬라브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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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역사 담은 알폰스 무하의 연작
무리한 해외순회 전시로 작품 훼손
화가 손자, 정부 상대 소유권 반환訴

위기에 놓인 ‘슬라브 서사시’ 슬라브 서사시 No.6의 캔버스 작업을 하고 있는 무하의 모습 [사진=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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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슬라브 서사시(Slav Epic)'는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의 대표작이다.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연작 시리즈로 큰 그림이 가로 8m, 세로 6m에 이른다. 체코 정부의 국보이기도 한 이 작품이 최근 무리한 해외 전시 추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화가의 손자이자 무하재단 이사장인 존 무하(68)는 체코 정부에 요구한 기증 조건이 상당 부분 이행되지 않았다며 소유권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알폰스 무하는 체코를 대표하는 국민화가이자 아르누보의 선구자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에 열한 편의 슬라브 서사시를 그렸다. 이듬해 프라하의 클레멘티눔에서 첫 선을 보였고, 1921년 시카고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다섯 점을 전시했다. 당시 전시는 60만 명이 다녀갈 만큼 성황을 이뤘다. 해외에서 진행된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였다.


슬라브 서사시는 무하가 인생을 바친 역작인 만큼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1926년 그는 20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스무 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필생의 작업으로 슬라브 공통의 유대와 이상적 평화를 향한 바람을 담았다. 무하는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이던 1928년에 슬라브 서사시 전 작품을 조국에 기증했다. 그리고 나치가 프라하를 침공한 1939년에 민족주의자라는 이유로 심문을 당해 그해 7월 사망했다.

슬라브 서사시는 2012년부터 프라하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템페라(달걀노른자, 벌꿀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물감)기법을 차용한 것이 특징인데, 무하는 순수한 달걀 템페라가 아닌 달걀노른자에 빻은 안료와 물, 기름 등을 적절히 섞어 사용했다. 독특한 화법은 투명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지만, 손상되기 쉬운 조합으로 표면이 쉽게 갈라진다는 흠이 있다. 대형 작품이라서 운반도 쉽지 않다. 특히 해외 전시를 하려면 액자에서 떼어내 말아서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작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위기에 놓인 ‘슬라브 서사시’ '슬라브 서사시 연작 중-슬라브 민족 원래의 고향', 1912, 캔버스에 템페라, 610×810㎝



존 무하는 11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작품을 말고 풀고 다시 펼치는 작업은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단순한 운송 위험, 기후 변화에 따른 요소보다 더 위험하다"면서 "결과적으로 슬라브 서사시는 더 이상 알폰스 무하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닌 보존가들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체코 정부는 최근 자국의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며 해외 순회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가시화되고 있는 올해 봄 일본 내셔널아트센터에서의 전시가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체코정부는 지난해 한국에도 전시를 제안한 바 있다. 기증 당시 조건이었던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다'에 위배돼 협상은 무산됐다.


해외전시를 반대하는 이들은 체코 정부가 작품전시를 통한 수익에 눈이 멀었다고 입을 모은다. 뉴욕타임즈 등 해외 주요 매체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고,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반대 서명운동이 일고 있다.


체코 정부가 처음부터 욕심이 부렸던 건 아니다. 1921년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시하면서 작품이 손상되자 1936년 해외 전시를 금지했다. 존 무하는 "알폰스 무하는 애초 프라하 시(市)를 통해 체코(당시에 체코슬로바키아)에 기증하려고 마음먹었다. 프라하 시는 작품의 적합한 장소를 제공했다"면서도 "2010년 즈음부터 체코정부가 일본 등에서의 해외전시를 추진했다. 무산된 계획이 최근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대만뿐 아니라 다른 국가로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품 상태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방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유권 반환소송의 첫 심리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8일에 열린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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