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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육신'이 없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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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없는 말들이 있다. 말로서의 거죽-그것을 말의 형상이라고 하든, 말의 기표라고 하든 간에-은 있으나 뼈와 살과 피가 없는 말들이 있다.


며칠 전에 사실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나선 한 인사가 비장한 심장으로 던진 출사표 속의 말에서 나는 그런, 육신이 없는 말의 공허함을 봤다.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사를 각오'라고 했는데, 그에게 몸을 불사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에게 자신의 몸을 실제로 불살랐던 청년들의 삶과 죽음, 고뇌와 슬픔에 대한 손톱만큼의 이해라도 과연 있었을까, 라고까지 묻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말은 적어도 내게 비친 그의 삶, 혹은 그와 같은 삶을 산 사람의 말이 될 순 없는 말, 결코 그의 말이 돼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몸을 태우는 불이 아니라 아마 지금 초등학생 아이들까지도 추운 겨울 거리에서 켜고 있는 저 작은 촛불이 전하는 열기조차 한 번이라도 느껴봤을까 싶은 그에게는 결코 속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몸을 불사른다는 그 말은 그의 입에서 나왔을 뿐 그의 가슴에서 올라올 수는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전에 그 말이 먼저 불에 타버렸다. 발화(發話)되는 순간 금방 불에 타버렸다.


그의 말의 공허함은 어떤 말들, 어떤 이의 말들은 아무리 짧아도 장황한 수다가 돼 버리고 만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그의 말의 공허함은 지금은 '정치적 좀비'가 된 어느 최고권력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말의 더할 수 없는 공허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 권력자의 입에서 나왔던 수많은 말들은 말을 잃어버린 말, 말을 부인하는 말이란 뭔가를 보여줬다.


나는 무엇보다 2년 전에 국무회의 등에서 '골든 타임'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는 걸 봤을 때의 공허함을 잊지 못한다. 그 공허함은 섬뜩하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골든 타임'이라는 용어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들어본 적조차 없었을 말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그 말을 입에 올리기란 힘들었다. 그런데 특히 절대로 회한과 고통 없이는 그 말을 쓸 수 없는(없어야 하는) 이의 입에서 그 말이 수 없이 나왔다. 그것은 그 권력자의, 처참할 정도로 빈약하고 저급하며 공허한 정신세계, 얼음장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그의 말들이란 게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그의 말들은 단호할수록 가벼웠고, 결연할수록 허망했다. 말로써 말을 밀어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앙과 비극의 한 진상은 이제 와서야 그의 말의 실상을 너무도 뒤늦게, 마치 새로운 사실처럼 발견하게 됐다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대통령과 같은 큰 책임과 권한을 지닌 자리에 합당한지를 물을 때 반드시 눈여겨 살펴봐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일 듯하다. 육신이 있는 참말, 온전한 말을 하는가, 아니면 형상만 갖춘 말, 말이지만 말이 아닌 말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자신의 말을 하는가, 아니면 남의 말, 거죽만 빌려 온 말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몸을 불사른다'와 같은 말, 그 자신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게 아닌가를 제대로 봐야 하는 것이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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