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정·재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검찰 수사가 급격히 재계를 향하고 있다. 최씨 국정농단에 대한 진상규명의 여론이 비등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야당과 검찰이 최씨 연루 기업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검찰의 전방위 소환 조사와 압수수색으로 이미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재계는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무차별 폭로전에 검찰이 편승하면서 최순실 게이트에 엮인 기업과 총수들을 피의자와 범법자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순실 게이트보다는 '대기업 게이트'가 부각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의심나면 무조건 소환에 압수수색…총수 구속하라는 공당
재계는 검찰 트라우마에 빠졌다. 현 정부에서 추진한 국정과제와 주요 인허가 사업, 개별회사의 경영 현안까지 모두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검찰이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기업들을 모조리 압수수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특혜 의혹이 나오자 삼성과 국민연금에 검찰이 들이닥쳤다.
24일에는 면세점 사업권에 최순실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의혹이 나오자 롯데와 SK 등 관련 기업들을 압수수색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특혜와 관련해서는 고교와 대학, 삼성, 승마협회, 마사회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미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과 관련된 53개 기업의 실무진과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기업 총수 9명이 10시간 넘게 검찰에 불려 나가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특검 수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가 다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 총수 9명은 내주부터 시작된 국정조사에도 불려 나간다. 전 국민에 생중계되는 국정조사에서 주도권을 잡은 야당과 '한 방'을 노리는 국회의원들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와 호통, 고함, 면박이 예고된 상태다.
공당(公黨)인 정의당은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경련 해체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검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마쳤고 검찰이 이미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향후 국정조사나 특검에서 재벌도 공범이라는 관점으로 철저히 정경유착을 뿌리 뽑는 계기로 만들어야 된다"면서 "이재용 부회장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하루 만에 구속 수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 여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고 피의자라고 해도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 데도 입법부에서 대기업 총수를 구속 수사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검찰과 정치권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계 "야당, 선명성 경쟁에 재벌까지 불똥…사업하기 어려워졌다"
반(反) 기업정서에 편승한 야당과 진보단체가 법인세 인상을 비롯한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강공에 나서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사업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여당의 붕괴에 정국 주도권을 확보한 야 3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초고소득 법인과 개인에 대한 과세율을 높이는 내용의 소득세법ㆍ법인세법 개정안, 기업 총수 견제 기능 강화, 소액주주의 경영 감시 활성화, 사외이사제 개편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 등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경제계가 요구해 온 노동개혁과 규제개혁,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을 담은 경제활성화는 무력화됐다. 개방 경제 하에서 한 나라의 조세정책은 세계적인 흐름과 경쟁국의 정책 변화에 맞춰 결정돼야 한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자국 기업의 고용과 투자 확대, 해외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모두 법인세 인하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만 역주행하고 있다. 야당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 야 3당이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지지층 결집과 외연 확대를 위해 선명성 경쟁에 나서는 한편 19대 국회에서 당정청과 경제계가 경제활성화를 이끌었다는 데 대한 분풀이도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전 세계가 자국산 우대와 자국 산업ㆍ기업 보호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한국은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으로 자국 기업과 기업인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면서 "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도 이 같은 파장이 계속되면 해외에 나간 국내 기업들은 돌아오지 않고 본사의 해외 이전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업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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