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국정농단 사태 실체 규명에 비협조적인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 수사가 한창이다. 비선실세 최순실(구속기소)씨의 청탁 창구로 전락한 청와대가 재계와 ‘부정한 청탁’을 나눴는지가 관건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한 경위 등 삼성그룹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대가로 얻은 것이 있는지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최씨 일가가 이권을 챙기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민원을 챙기고 직접 재계와 접촉하거나 청와대, 정부부처 관계자를 동원한 정황을 확인했다. 최씨 딸 정유라씨의 초등학교 동창 아버지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의 경우 박 대통령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대면한 자리에서 계약 종용이 이뤄졌다.
협력업체 명단에도 없던 업체가 기술력 검증마저 생략한 채 수의계약으로 10억원대 일감을 따낸 배경에 정부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각종 정책 결정권과 사정(司正)권을 거머쥔 대통령의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그 대가로 업체로부터 샤넬백, 현금 등 5000여만원 상당 금품을 챙겼고, 업체 대표는 올해 5월 박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따라 갔다.
검찰은 대통령이 재계에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강요죄의 협박에 해당하며, 대가성이 인정되면 뇌물죄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최씨가 이익을 챙긴 경우 박 대통령의 관여 여부에 따라 제3자뇌물수수 내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이 문제된다. 검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원을 댄 삼성이 박 대통령과 직거래한 내역이 있는지, 최씨 일가에 대한 최소 50억원대 특혜지원이 그가 ‘비선실세’임을 알고 이뤄진 것인지 여부다.
앞서 참여연대 등은 삼성의 재단 출연 및 최씨 일가 지원이 경영권 승계 편의를 위해 삼성그룹 총수일가와 주고받은 뇌물이라며 박 대통령과 최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차례로 고발했다. 삼성물산이 실질적 지주사로 자리매김하고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홍완선 전 본부장도 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됐다.
작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계획을 발표하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공식 자문기관이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비롯한 국내외 의결권자문기관들은 줄줄이 반대했다. 이 부회장의 지분이 전무했던 삼성물산의 가치를 저평가해 총수일가는 득을 보고, 일반 주주는 물론 2대 주주 지위에 있던 국민연금조차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홍 전 본부장 등 내부인사만 참여한 투자위원회를 거쳐 3시간 반만에 찬성으로 결론냈다. 당시 외부 민간 전문가 그룹으로 꾸려진 보건복지부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의사는 묻지도 않아 의결위가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반대표가 유력할 것으로 지목된 의결위를 건너뛰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후 홍 전 본부장의 연임에 반대하던 연금 이사장이 사실상 퇴출되며 외압 의혹도 제기됐다.
최씨 입김 등에 청와대가 움직였는지가 관건이다. 그해 3월 삼성은 정유라 특혜 지원 의혹을 받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에 올랐고, 두 달 뒤 통합삼성물산 계획을 내놨다.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 등 재계 총수 7명을 독대하며 재단 설립 지원을 당부한 건 합병안 가결 주총 일주일 뒤다. 최씨 조카 장시호(구속)씨가 이권을 노린 의혹을 받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맡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공개된 단면만 두고 보면 삼성은 ‘피해자’다. 검찰은 전날 삼성그룹으로 하여금 장씨가 설립·운영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센터에 후원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장씨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구속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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