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정준영 기자]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초유 직접 조사를 앞둔 검찰이 비선실세를 통해 권력과 거래한 의혹을 받는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모두 불러 조사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13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4명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전날 오후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도 차례로 불러 조사했다.
이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직거래’한 의혹을 받는 국내 대기업집단 총수들이다. 경제정책이나 사정(司正)권 발동 등 각종 수혜와 법인 자금을 맞바꾼 박 대통령의 ‘거래 상대방’ 내지 ‘피해자’로 지목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 17명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공식 행사에서 "한류를 확산하는 취지에서 대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내 놓은 박 대통령은 이튿날까지 따로 일부 총수들과 개별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비선실세 최순실(구속)씨가 주도한 재단 설립·운영과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의 지원사격 시발점으로 주목받는 자리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불과 석 달 앞둔 시점에서 박 대통령과 재계 사이에 모금 독려와 민원 청탁이 교환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검찰이 주말을 통해 국내 굴지 대기업 총수들을 일거에 불러들인 것은 박 대통령의 조사를 앞둔 사전 정지작업이다.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은 오는 16일 방문조사가 가장 유력하다. 검찰은 늦어도 16일까지는 대통령 대면조사가 필요하다고 전했고, 청와대는 변호인 선임 등을 이유로 15일께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경호상 우려에도 불구 박 대통령이 검찰에 직접 출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간 재단 출연기업들에 대한 전수조사 방침 아래 각 그룹 대관업무 담당 임원이나 서면 자술서를 통해 지원경위를 추궁해 온 검찰은 ‘대가도, 피해도 아니다’는 재계 주장이 실체와 배치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대통령-비선실세-재계’로 이어지는 거래관계가 설립주체와 출연주체가 분리된 ‘재단’을 통해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 만큼 대가성을 입증할 핵심 열쇠는 재계 ‘입’이 쥐고 있다. 당초 롯데그룹 역시 면담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환 대상에서는 빠졌다. 검찰은 경제 영향 등을 고려해 총수 조사는 조사 경과에 비춰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에 대해 포괄적 뇌물죄 적용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군부 수괴 뇌물 사건에서 정책 결정·집행이나 제도 운용에 있어 우대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취지로 자금을 내놓아도 대가성이 인정되는 뇌물이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고,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으며, 대통령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도 유무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조사받을 경우 “일단 참고인 신분”이라고 전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최씨 측 압박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다는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조 회장은 최씨와 연관된 올림픽 이권 사업을 거부했다가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통해 위원장직 사퇴를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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