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31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 최순실(60·사진)씨의 혐의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어떤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하느냐에 사태의 향후 흐름 등이 좌우될 수도 있어서다.
이 때문에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최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혐의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씨 측도 이 대목과 관련해 말을 아끼긴 마찬가지다.
최씨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최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들어간 뒤 기자들을 만나 최씨에게 적용된 혐의와 관련해 "검찰이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 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국정농단 파문의 장본인 최순실씨에게 사법적으로 적용 가능할 것으로 추론되는 혐의는 크게 열 가지 안팎으로 정리된다. 당장 거론할 수 있는 건 횡령ㆍ배임ㆍ조세포탈 등이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으로 흘러들어간 각종 명목의 기업 출연금과 관련해서다.
적게는 수 백 억원, 많게는 수 천 억원 규모로까지 거론되는 최씨의 재산 중 상당부분은 이들 재단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게 정설에 가깝다. 최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를 포함해 십수개에 이른다는 페이퍼컴퍼니는 두 재단이 끌어모은 돈을 최씨가 챙겨가는 통로였을 가능성이 높다.
최씨 개인 차원으로는 횡령 혐의를, 재단들 입장으로는 배임 혐의를 각각 적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돈을 굴린 최씨가 세금 문제에서 자유로을 리는 만무하다. 자연스럽게 조세포탈 혐의가 따라붙는다.
아울러 최씨가 해외 거주지에 주택을 구입하거나 딸 정유라씨의 말을 구입할 목적으로 외화를 마련해 밀반출했다면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 최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보유한 빌딩의 가치는 최소 2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강원도 평창군 땅 7만여평도 갖고 있다.
이같은 '의문의 재산'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자금 흐름과 융통 기법 등을 둘러싼 혐의의 무게는 갈수록 더 무거워질 수 있다.
돈보다 더 큰 문제, 국정농단 파문의 핵심인 청와대 연설 및 정책, 예산, 인사 관련 각종 자료를 사전에 입수해 들여다보고 주무르며 전횡을 일삼은 의혹과 관련해선 우선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언급된다.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도 뒤따른다.
그간 대통령기록물과 관련된 몇 차례의 재판에서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하는 법원의 기준이 매우 엄격했던 점 등을 근거로 혐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법원이 판단에 활용했던 기준들, 가령 '생산이 완료된 원본인지' 여부 등으로 이번 사안을 재단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사건들과 비교해 적용 가능성을 축소하는 건 잘못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두고는 이견이 별로 없다.
아울러 박 대통령의 주요 인사 구상안을 사전 입수해 인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주요 정책 결정에 개입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제기된 의혹처럼 최씨가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혹은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대기업들을 압박해 재단 출연금을 쥐어짠 게 사실이라면 강요죄, 나아가 공갈죄도 적용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최씨의 사법처리 가능 여부나 적용이 가능한 형법상의 혐의를 따지는 쪽으로 논의가 흐르는 게 자칫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기를 흔든 것은 형사상의 법리 차원을 뛰어넘는데 법리상으로만 잘못을 따져물으면 사안이 협소해지고 축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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