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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은 어디로 가고…문화계 탄압만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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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 '블랙리스트' 사태에 거센 반발…책임 추궁 및 재발 방지 요구

'문화융성'은 어디로 가고…문화계 탄압만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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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이거 참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도 넣어라, 이놈들아."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가수 이승환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세월호 및 용산 참사, 촛불집회 등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소신껏 밝혀왔던 그가 정작 9437명이나 되는 블랙리스트 명단에는 빠져있었다.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나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1만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이들 사이에선 "분발해야 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왔다.

공연·영화·문학·미술 등을 총망라하는 이 리스트의 실체에 대해 문화예술인들의 저항 역시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진상규명과 함께 관련 책임자을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가 맞닥뜨렸던 예술문화계 탄압과 본질이 같은 사건"이고 "현 정권이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만화 등 전방위에 걸쳐서 지원금은 물론이고 창작, 출판, 제작, 공연, 전시 등의 발목을 비틀어왔다"고 규탄했다. 예술행동위는 문화연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한국작가회의, 예술인소셜유니온 등 문화예술단체들이 이번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모인 조직이다.


이 자리에서 백기완 통일문화연구소장은 "블랙리스트를 우리말로 하면 학살 예비자 명단"이라며 "학살 예비자 명단을 만든 나라는 서양에서는 히틀러, 동양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한국에서는 군사독재 정권 때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화가 박재동 화백은 "수많은 만화가 후배들이 '세월호 관련 서명에 동참했는데 왜 내 이름이 왜 빠졌느냐'고 불만이 많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문화융성'은 어디로 가고…문화계 탄압만 남았나 18일 문화계 인사 100여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앞서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등 85개 연극단체들도 "블랙리스트 작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의 각종 기본권을 매우 심각하게 파괴하는 행위"라며 "정부는 문화를 융성하기는커녕 그 기초마저 야만적으로 파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부산, 대전, 광주 등 지역 곳곳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며 책임자에 대한 청문회 실시와 재발방지 대책마련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트위터 등 SNS에서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박범신 작가는 "저들이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기 훨씬 전에 나는 내 블랙리스트에 저들을 올렸어요. 저들의 블랙리스트는 내 블랙리스트가 옳았다는 확실한 반증이지요"라는 글을 남겼고,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내 생각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보다 최근 몇 년 동안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누가 무슨 심사를 했으며, 누가 무슨 기획을 했는지, 그 명단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안도현 시인은 "블랙리스트 중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단을 살펴보았다. 참 다행이다"라고 적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에 지난 10~16일 트위터 상에서 가장 이슈가 된 핫키워드로 '블랙리스트'가 오르기도 했다.


정부가 별다른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추궁을 끝까지 하겠다는 입장이다. 릴레이 성명과 기고를 이어가는 한편 예술검열 반대 2차 만민공동회도 열 계획이다. 부산작가회의는 "국가 권력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의도는 자명하며, 정부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은 당연히 실패하고야 말 것"이라며 "블랙리스트라는 낡아빠진 방식에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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