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홍유라 기자]대한민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지만 정치권은 정쟁(政爭)에만 빠져 경제이슈를 외면하고 있다.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 논란'으로 촉발된 대선 레이스에 얽힌 여야 공방은 점입가경이다. 자연스럽게 대선 의제들은 일보 후퇴했다. 넘치던 주자별 성장론은 물론이고 시급한 부동산 대책 등 경제 정책 논의도 자취를 감췄다.
18일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있단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지난 2분기 가계부채는 1257조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갤럭시 노트7의 단종과 파업 등을 겪었다. 특히 강남 재건축시장 등 특정지역의 부동산투기 광풍은 과열될 대로 과열됐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선 국면에 얽힌 정치권은 각자 손익 계산에 여념이 없다. 경제 난국을 타개할 심도 깊은 논의나 의제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불거진 송민순 회고록발(發) 정쟁으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됐다. 여야 잠룡들은 야심차게 성장론을 꺼내들었지만 그 기세가 무력하다. 앞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국민성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공정성장, 유승민 의원은 혁신성장을 각각 역설한 바 있다.
소모적인 정쟁에 휩싸인 정치권에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은 일침을 놓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전 대표는 "일촉즉발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은 벌써 대선정국으로 치달려가 위기의 근본을 해결하려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은 커녕, 안보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이념의 대결만 일삼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질타했다.
김 전 대표는 전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여당은 정권실세의 일탈을 가려보자고 과거의 흠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국력을 낭비하고 있고, 야당은 벌써 대권경쟁에 돌입해 나라전체가 시급한 민생이슈를 실종케 하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하지만 송민순 회고록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기세다. 이날에도 여야는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등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송민순 회고록 관련, 대통령 기록물 열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문 전 대표의 침묵을 겨냥해선 "회피한다"며 날을 세웠다.
여권의 잠룡으로 꼽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날 'SBS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는 지금 뒤로 숨으면 안 된다. 그런데 뒤로 숨어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애매하게 말씀하신다"며 "엉뚱한 정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 모습이 지도자의 모습은 아니다. 최근의 모습을 보고 좀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송민순 회고록 문제로 새누리당이 아주 신난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며 "녹아내리는 색깔론으로 빙하기에 새누리당이 올라탔다. 안타깝다. 허망하게 사라질 신기루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관계자는 "연말에 내년 예산안을 놓고 경제관련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한시가 시급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온통 정쟁에만 몰두해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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