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매년 한 자리에 모이는 G20 정상회의에서는 불꽃 튀는 '정상 외교전'이 최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중국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부 회원국 정상들은 겉으로는 저성장 늪에 빠진 세계 경제 회복 공조에 주안점을 뒀지만 핵심은 군사·안보 패권을 둘러싼 각국 정상 간 주도권 싸움으로 좁혀진 분위기다.
특히 주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과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 이슈로 외교적 고립 상황을 맞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해 당사국인 한·미·일 정상과의 연쇄 회담을 통해 난국을 돌파할 지 이목이 쏠렸다.
G20 회원국 정상 간 외교전의 불씨를 당긴 건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의 양자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사드와 남중국해 영유권 등 갈등 현안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은 미국이 사드 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하는 데 반대한다"며 중국의 전략적 안전(안보) 이익을 실질적으로 존중할 것을 면전에서 요구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답변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드는 북한의 잠재적인 미사일 파괴용일 뿐 중국에 대한 위협 요소가 아니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중 정상은 날선 공방을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른 의무 준수를 내세우며 국제 판결 수용을 촉구하자 중국은 남중국해 영토 주권과 해양 권익을 확고하게 수호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이 평화 안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압박했다.
이들 국가는 정상 간 기싸움 외에도 정상 의전을 놓고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은 중국이 오바마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홀대했다며 현재의 미중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4일 열린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중러 양국의 밀착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시 주석은 "러시아는 G20의 중요한 회원국"이라며 G20 회의 준비 과정에서 러시아와 긴밀히 공조했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했다.
그러면서 "중러 양국은 전방위적인 전략적 협력을 더욱 긴밀하게 강화해 나가야 한다"면서 "상대국의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확고히 지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을 사실상의 주빈 정상으로 예우한 것으로 풀이했다.
시 주석은 이날 하루에만 푸틴 대통령 외에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등 5개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했으며 G20 회의 전 10여개국 정상과 만나는 등 정상 외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입장에서는 G20 회의를 계기로 일본과는 혹시 모를 무력 충돌의 위험성을 없애고 한국과는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상징적 전환점이 되길 바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 주석은 5일 G20 회의가 막을 내린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뒤늦게 양자 회담을 갖고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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