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민주 당대표 선출=정개개편 신호?
새누리당 친박 쏠림, 더민주 친문 쏠림
김종인 "양극단에서 밀려난 비주류가 중간지대에서 정계개편"
박지원 "더민주 전당대회가 분수령"
'제3지대론' '중도통합론' 봇물
대선후보 경선 룰 정하는 내년 중순이 적기
강력한 구심점 마련이 변수
한국정치사에서 여당은 분당한 적 없어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거세게 불어닥친 '추풍'(秋風)은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까.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지도부로 도배되면서 당내 비주류의 활로 찾기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계파색이 옅은 '김종인 체제'가 물러나고 들어선 '추미애 체제'로 주류 쏠림 현상이 불가피했졌다는 설명이다.
더민주 내에선 친문의 색깔이 강화되면서 벌써부터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후보를 예약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비문의 소외감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친박 지도부가 당권을 장악한 새누리당과 비슷한 모양새다. 지난 9일 전당대회에서 친박이 당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까지 거의 독식하면서 새누리당에선 강경 친박(친박근혜)과 온건 친박, 비박(비박근혜)의 구별이 뚜렷해졌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는 진박(진짜 친박)까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렇듯 새누리당이나 더민주 모두 주류 쏠림이 불가피하다. 강경 친박 혹은 진박과 친문이 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크고 작은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물러나는 김종인 더민주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지나치게 어느 한 계파로 쏠리면 새로운 움직임이 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예 "새누리당은 친박으로, 더민주는 친문으로 계속 가고 있는데 이렇게 간다면 중간지대에서 정계개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른바 '제3지대론'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더민주 전당대회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추미애 더민주 신임 당대표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다. 선출 직후 "집 나간 당원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라며 '통합'을 기치를 내건 이유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4·13총선을 앞두고 갈라져 나간 국민의당은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지지층은 물론 경제·이념적 측면에서 여당인 새누리당과 상당 부분 결을 같이 한다. 세간에 떠돌던 호남과 PK(부산·경남) 연합정권설의 배경이다.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호남세력과 친박 정권에서 소외된 PK세력이 결집해 새 정권을 창출할 것이란 시나리오였다.
현재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새누리당 비박계와 더민주 내 비주류, 국민의당이 힘을 합치는 '거시 제3지대론'과 더민주 비주류와 국민의당이 헤쳐모이는 '미시 제3지대론'이다. 국민의당을 축으로 여야 모든 비주류가 새로운 정당을 꾸리는 '중도 통합론'도 거론된다.
변수는 향후 제3지대에 머물 것으로 보이는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의 행보다. 이미 정치권에서 인심을 잃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가장 확실한 축이다.
추동력은 약하지만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의 '늘푸른한국당',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새 한국의 비전' 등도 미묘한 변수로 꼽힌다.
이 같은 비주류들의 활로 찾기는 군불을 때다가 내년 중순 이후 점차 본격화할 것이란 설명이 힘을 얻는다. 이즈음부터 각당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룰'을 정하고,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도 불거진다. 양극단에 속하지 못한 소외된 중도성향 세력들이 제3지대를 모색하는 움직임에 가속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여당에선 일찌감치 비박인 김무성 전 대표가 대권 행보를 선언하며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친박세력과 결을 달리하며 원외에서 힘을 키우는 중이다. 온건파인 유승민 의원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이런 가운데 당권을 내놓은 김종인 더민주 전 비대위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문 진영을 비판해온 그는 역시 친문과 거리를 둔 손 전 고문과 최근 접촉했다. 친문과 갈등하며 떨어져 나온 국민의당의 박지원 비대위원장, 안철수 전 상임대표도 손 전 고문에게 손을 내밀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형국이 됐다.
그러나 정계개편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보인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비박계와 더민주 비주류가 탈당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제3세력 구심점으로 나설 강력한 대권주자도 없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의 전제는 양당 비주류의 세결집을 위한 구심점 마련이다. 강력한 대권주자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집권 가능성이 엿보이는 유력 주자가 나서야 새누리당과 더민주 현역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을 감행할 수 있다.
이 정도 파괴력을 지닌 주자들은 여권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유승민 의원, 야권에선 안 전 대표, 손전 고문, 김부겸 더민주 의원 등이다. 이들의 정치색깔도 중도 성향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해관계나 미묘한 성향의 차이가 난다.
게다가 한국정치사에서 야당과 달리 여당은 분당을 해본 적이 없다. 분당과 합당을 거듭하며 세력을 키워온 야당과는 생리 자체가 다르다. 정치이념이 아닌 이해관계나 이익에 방점을 찍은 만큼 비박이 탈당을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