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지난해 제약사 '튜링'은 에이즈 치료제인 다라프림의 가격을 55배 올리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올해는 또 다른 제약사가 약값 폭리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바로 알레르기 치료제인 '에피펜' 제조사인 밀란이다.
에피펜은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을 때 증상을 완화해 주는 에피네프린 주사 치료제다. 알레르기 반응은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하므로, 때에 따라 생명을 죽이고 살릴 수도 있는 약이다.
밀란은 2007년 이 약의 독점공급권을 사들여 값을 여러 차례 올렸고, 주사제 두 개가 든 약 한 통의 가격은 93.88달러(약 10만4000원)에서 608.81달러(67만8000원)으로 6배 이상 올랐다. 주사 한 대에 33만9000원이나 하는 셈이다. 이 약의 원가는 개당 1달러밖에 안 된다.
이 사실이 미국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밀란은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의약업계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됐다. 특히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이같은 약값 인상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도 "원가가 몇 달러 하지도 않는 에피펜이 600달러씩이나 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다. 미국 상원은 밀란에 약값 인상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고, 미국의학협회(AMA)는 과도한 약값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언론 보도 직후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헤더 브레시 밀란 최고경영자(CEO)가 25일(현지시간) 직접 미국 CNBC방송에 출연해 해명하기도 했다. 약값이 600달러까지 치솟은 것은 밀란의 탐욕 때문이 아닌, 잘못된 약값 유통체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약값 608달러 중 밀란이 벌어가는 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274달러에 불과하며, 나머지 334달러는 보험사와 제약 도매상 등 유통업자들이 가져간다고 해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건강보험 개혁인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비판하는 것이다. 브레시 CEO는 "고용주들이 좀 더 공제율이 높은 상품을 선택하면서 결국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더 많이 나가게 됐다"며 시장 구조에 잘못을 돌렸다.
또 밀란은 여론을 의식, 의료 쿠폰카드 등을 이용해 최대 300달러까지 약값을 할인받을 수 있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은 밀란이 약값 자체를 인하하겠다는 말을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 약값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고 있다며 여전히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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