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래에셋증권이 판매한 '바다로 18호'에 투자했다 100억원대 손실
변동 운임에 용선료 급락, 선박도 매입가 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
"위험성 제대로 안 알렸다"…연기금이 금융사 상대 이례적 소송
[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선박펀드에 투자했다가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본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선박 펀드를 판매한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9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개인 투자자가 아닌 연기금이 투자 손실을 이유로 해당 금융 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올해 1월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선박펀드 투자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가액은 91억5000만원이다.
약 4조원 규모의 과학기술인연금을 운용하는 과학기술인공제회는 2011년 8월경 미래에셋증권이 출시한 '바다로 18호' 선박펀드에 투자했다가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자 “투자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선박펀드는 자금을 모아 선박을 건조한 후 해운사에 임대해주고 임대료를 받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상품이다. 미래에셋증권이 출시한 선박펀드는 8만2000DWT급 벌크선 2척을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해 글로벌 곡물회사인 카길에 변동운임 조건으로 일정 기간 배를 빌려준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매각하는 구조였다.
미래에셋증권은 1200억원의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하면서 삼성물산과 함께 배 가격의 7%를 지분투자했고, 53%는 국내 연기금과 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나머지 40%는 북독일 주립은행(NordLB)의 선순위 대출로 조달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해당 상품을 출시하면서 “해운경기가 회복되면 용선료 상승과 선박가격 상승에 따른 이중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미래에셋증권의 전망과는 반대로 해운경기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용선료 하락과 선박가격 하락이라는 이중의 손실을 봤다.
벌크선 운임을 보여주는 발틱운임지수(BDI)는 2010년 하반기 3000선 내외에 머물다가 미래에셋증권이 해당 상품을 출시할 무렵인 2011년 8월에는 1300선까지 급락했다. 당시에는 단기간에 급락한 BDI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면서 BDI는 지난해 2월 역대 최저치인 290까지 떨어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용선료를 받아서 투자자들에게 배당도 하고 대출금도 갚는 구조였는데 용선료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배당은 고사하고 대출금 갚기도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해운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선박 가격도 자연스럽게 하락했다. 과학기술인공제회가 투자한 '바다로 18호' 펀드는 지난해 8월 청산하면서 카길에 빌려준 벌크선을 매각했는데 매입 가격 보다 낮은 가격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용선 계약을 체결할 때는 고정운임으로 해서 가격 변동 리스크를 줄이는데 미래에셋증권은 변동운임으로 체결하는 바람에 손실이 커졌다”면서 “미래에셋증권은 해운업 경기가 곧 살아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정부출연연구소와 기업연구소, 비영리연구법인의 과학·기술인들로부터 받은 공제회비로 조성한 과학기술인연금을 운용한 뒤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기관이다. 회원은 4만여명이며, 운용자산은 약 4조원에 이른다.
미래에셋증권은 2009년 과학기술인연금의 위탁운용 사업자로 선정돼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과학기술인공제회와 투자 손실과 관련해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안타깝다"면서 “향후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인공제회 관계자는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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