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지난 2주간 미국을 들썩이게 했던 전당대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올해도 예외없이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는 숱한 화제와 뉴스를 쏟아내며 이목을 끌었다.
올해 미국 전당대회에서도 100명이 훨씬 넘는 연사들이 불꽃튀는 경합을 펼쳤다. 전당대회 무대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리보는 유세 대결은 물론이고,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에서부터 전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 트랜스젠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사들의 주장과 사연으로 매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8일 동안 미국식 민주주의의 향연이 펼쳐졌고, 그 열린 논쟁의 치열함은 언제나 부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올해엔 부러운 것이 한가지 더 눈에 띄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미국 정당의 역사다. 민주당은 창당 188년만에 처음으로 여성 대선 후보를 선출했다. 트럼프와 같은 철저한 '아웃 사이더' 후보를 배출한 것도 162년 공화당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두 정당의 역사를 합치면 무려 350년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양당정치의 기둥으로 미국 정치와 사회의 근간을 이뤄왔다. 그들은 오랜 역사 만큼 긴 시간을 미국 사회의 문제 해결과 국가적 과제를 선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눈 앞의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국정 운영에 실패하고 경제를 파탄시키면 당장 그 다음 상·하원 선거나 대선에선 예외없이 민심의 응징을 받아야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과 냉혹한 민의 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변신과 도전도 끊이지 않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이란 대통령을 배출하며 노예 해방을 주도한 정당은 공화당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미국 사회의 진보와 민권운동의 물결 속에 이에 반발하는 보수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차츰 자리를 잡아나갔다.
민주당도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거푸 집권에 실패했다. 이후 지도부와 당원들은 진보와 평등 어젠더를 강화했고 버락 오바마라는 최초 흑인 후보를 내세워 최근 8년간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의 양대 정당엔 350년간의 고민과 공과 그리고 지지층이 그대로 축적돼있다. 풀뿌리 민주정치의 자양분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 정당의 역사는 그야말로 '떳다 방' 수준이다. 대통령의 임기말에 국정 운영 실패로 인기가 떨어지면 집권 여당은 여지없이 당 간판을 갈아치우며 대통령과의 인연을 정리한다. 선거때마다 유력 후보 한명만을 바라보며 급조됐다가 사라진 정당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현재 한국 정치를 삼분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국민의당의 간판의 역사는 다 합쳐도 6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내년 12월 대선 때 투표용지에 당명이 그대로 남아있을지조차 불분명해보인다.
이같은 정당 급조의 문제점은 책임 정치를 실종시킨다는 점이다. 기업으로 따지면 분식회계와 같은 눈가림이다.
앞으로 한국의 전당대회에서도 국민과 함께 웃고 울었던 역사를 자랑하는 정당들이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과 비전을 바탕으로 당당히 지지를 호소하고 비판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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