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를 뜻하는 ‘퓨전 (fusion)’이란 말은 사회 여러 영역에 걸쳐 사용한다. 예술 분야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도 이제 일반화가 되었다. ‘퓨전’은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어울림으로 여러 분야의 한 장르가 되었다.
요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90년대에 ‘퓨전 요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강남 청담동 일대에 퓨전 요리 전문 레스토랑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기억으로 그 부류의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퓨전 요리들은 맛의 관점보다는 여러 나라 식재료의 혼합과 완성된 요리의 플레이팅에 주력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요리법을 배워서 따라 하기 바빴다. 이후에는 퓨전 요리의 다른 이름으로 뉘벨퀴진(nouvelle cuisine), 멀티 컬처 푸드(multi culture food), 크로스 오버 푸드(cross over food)등 이름만큼이나 어렵고 다양한 요리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한때 유행처럼 문을 열었던 퓨전 요리 레스토랑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이제는 퓨전을 선보이지만 퓨전 요리라고 표방하지 않을 만큼 퓨전은 일상이 되었다.
철판볶음밥
퓨전 요리의 시작은 언제일까? 음식도 하나의 문화이니 문화교류가 시작된 시점이 퓨전 요리가 시작된 시기라 추정할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도 마르코폴로도 퓨전 요리를 맛보았을 것이다. 문화가 교류되면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뭔가 새로운 맛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창조된 것이 퓨전 요리의 결과일 것이다. 특히 이민자수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는 퓨전요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고 특별한 퓨전 요리는 세계의 대도시에서 유행을 하게 되었다. 운송수단이 발달하고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기회가 많아져서 여러 나라의 식재료를 맛볼 수 있게 되면서 우리집 식탁도 퓨전 요리가 가득해졌다.
잘 어울리지 않는 재료와 맛들을 섞고 요리법이 전혀 다르지만 모양새만 비슷하다고 그 이름을 붙여 퓨전 요리라고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때로는 요즘 요리가 어색할 때가 많고 이상한 요리가 퓨전 요리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전통만을 고집하자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퓨전 요리가 오명을 씻으려면 퓨전 요리를 만들 때 각 재료의 특징을 잘 살려 원뜻처럼‘조합, 조화’를 이루어내는 요리들을 만들면 좋겠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 (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