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길의 영화읽기]베이커의 굴곡진 인생, 영원한 청춘찬가

시계아이콘01분 5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영화 '본 투 비 블루'...굵직한 사건에 상상 채워 감동 극대화

[이종길의 영화읽기]베이커의 굴곡진 인생, 영원한 청춘찬가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무라카미 하루키(67)는 소설가가 되기 전 재즈 클럽을 운영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시부야 센다가야역 근처에 있는 건물의 2층을 빌렸다. 재즈를 틀어놓고 낮에는 커피, 밤에는 술을 팔았다. 음식 맛이 좋아서 수입은 짭짤했다. 주말에 라이브 연주가 있어 단골손님도 많았다. 쳇 베이커의 음악도 흘렀을 것이다. 1997년 출간한 재즈 에세이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가장 먼저 언급했으니.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을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듯 빨아들이고, 다시 숨을 내쉬듯 밖으로 내뿜는다. 거기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조작할 필요도 없이 그 자신이 '매우 특별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커는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등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다. '마이 퍼니 밸런타인(My Funny Valentine)'은 재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탠더드 명곡. 흐느적거리는 듯한 음색과 서정적 멜로디로 대중의 마음을 빼앗았다. 얼굴도 잘 생겨서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베이커의 굴곡진 인생, 영원한 청춘찬가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그런데 베이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고독과 굴곡으로 얼룩진 사생활. 금관악기 연주자인데도 헤비 스모커였고, 평생을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했다. 동료 연주자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쓰러지자 겁에 질려 그 자리를 피했고, 마약을 구하려고 부인으로 하여금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팔게 했다. 자식에게는 옷 살 돈 한 푼 건네지 않았다. 199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베이커는 1968년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치아가 거의 다 부러졌다. 그래도 트럼펫을 연주했다. 로버트 뷔드로 감독(42)의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이 시기를 조명한다. 전기영화가 아니다. 굵직한 사건만 빌리고 나머지는 허구로 채웠다. 베이커(이선 호크)는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사랑하면서 헤로인을 멀리 한다. 트럼펫에 매달려 다시 무대에 선다. 실제로 그는 도장공,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폭력과 마약 사건에 자주 연루됐다. 여성 드러머와 불륜도 저질렀다.


뷔드로 감독은 "상상 속의 베이커를 그렸다"고 했다. 이유는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커가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광휘는 한여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소리 없이 어둠에 삼켜져버리고 말았다." 베이커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혼을 뒤흔든다. 영화 속 제인과 매니저 딕(칼럼 키스 레니)도 이 때문에 베이커의 곁을 맴돌 것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베이커의 굴곡진 인생, 영원한 청춘찬가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 컷


본 투 비 블루의 힘은 이를 부각하는 허구에서 나온다. 제인과의 사랑과 재기를 향한 몸부림을 서정적으로 그린다. 제인은 베이커에게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을 전한다. "우리가 사랑할 때의 감정 상태가 인간의 보통 상태다.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사랑할 때 드러난다." 그녀가 꿈꾸는 희망의 원천은 인간과 근로에 대한 애정이다. 영화에서는 파랑으로 표현된다. 이 색깔의 셔츠를 입었을 때 사랑을 얻고, 재기의 희망을 얻는다. 행복을 누릴 때도 주위는 파랗다. 고향의 드넓은 들판에 쌓인 눈이 석양에 반사돼 바닷물과 같은 청명한 기운을 내는 장면이 압권이다.


파랑은 베이커의 비극적 삶도 대변한다. 다시 선 무대에서 얼굴이 핀 라이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파란 어둠에 묻힌다. 피카소가 1903년에 발표한 '기타 치는 눈먼 노인'을 보는 듯하다. 푸른 배경에서 삶의 근원적 고통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뼈마디가 연주를 못할 만큼 앙상한 노인은 그래도 기타를 신체의 일부분처럼 안고 있다. 시대의 편린을 탐식해 얻은 자양분을 온 세계에 그대로 뿌리고도 살아남은 베이커처럼.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