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년간 비주력 계열사들의 매각, 비상장사의 합병, 지배구조 개선 등을 주도하며 삼성그룹 전 계열사에 걸친 체질개선에 나섰다.
이 같은 적극적인 경영 행보에도 이 부회장에게 재계가 붙여 놓은 것은 'e삼성의 실패'라는 꼬리표다. '경쟁과 검증 없이 무혈입성한 후계자'라는 것이 이 부회장에게 씌워진 주홍글씨다.
하지만 실제 이 부회장이 경영수업을 시작했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행적을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 과거 사장 시절부터 삼성전자 조직개편은 물론 한계사업에 대한 정리를 직접 맡아 왔고 최근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전 계열사에 걸쳐 인수합병(M&A) 등의 최종 결정권자로 자리매김하며 경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상무 시절부터 반도체 부문 경영전략회의 참석= 이건희 회장은 이 부회장이 상무 시절부터 반도체 부문의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할 것을 지시했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이 회의는 반도체 부문의 경영진과 미래전략실이 함께 참석한다. 반도체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투자 규모와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다.
이 회장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최소 수조 원에 달하는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이 회의가 이 부회장에게 글로벌 경제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길러줄 것으로 판단했다.
지금은 퇴임한 삼성전자 전 최고경영자(CEO) 중 한 사람은 "과거 상무 시절부터 이 부회장이 반도체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해 왔다"면서 "일부 투자건의 경우 전문경영인 입장에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찬성 의견을 전달해 성사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이 회장은 당시 전무였던 이 부회장에게 최고고객책임자(CCO)를 맡겼다. 세간에선 이 같은 조치를 놓고 경영권 승계를 위한 책임은 없고 권한만 막강한 자리로 옮겼다며 비난했지만 미래의 삼성에는 글로벌 인맥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의사였다.
◆사장 승진 후 삼성전자 부품과 세트 부문으로 분리= CCO 시절 축적된 이 부회장의 경험과 인맥은 2010년 말 사장 승진 이후 발현됐다.
이 부회장은 사장 승진 1년 뒤인 2011년 이 회장에게 삼성전자를 부품과 세트 부문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CCO 시절 부품 고객사들이 세트 부문으로 정보가 유출되는 점을 우려한다는 점을 들어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사업을 TV, 휴대폰 사업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사장으로 승진해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던 이 부회장은 글로벌 고객사들의 여러 의견을 제시하며 부품과 세트 사업을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면서 "당시만 해도 부품과 세트 사업을 함께 진행해온 것은 수직계열화 성격이 강했는데 이 부회장은 수직계열화로는 두 부문의 장기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조직개편을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소비자가전(CE) 부문, IT모바일(IM) 부문 등 3개 부문 체제를 안착시켰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한계사업 정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1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하드디스크 사업을 정리하고 반도체 사업부에서 진행 중이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SSD가 하드디스크를 밀어내고 스토리지시장을 대표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과감한 철수를 주문한 것이다.
그 밖에 노트북 사업을 제외한 PC사업 철수, PDP 사업 철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시장 선점을 과감히 포기하고 LCD TV로 전략을 선회한 점 등은 이 부회장이 직접 의사결정을 내린 사업들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이 회장을 직접 설득해야 하는 일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계 사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사결정은 단호했다"면서 "현재 수익은 내고 있지만 향후 확대가 불투명한 사업, 타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사업들은 정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회장 승진 이후 M&A 전략 본격화, 신사업에 매진= 부회장으로 승진한 직후인 2012년부터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와 전략혁신센터(SSIC)를 통해 신사업과 관련된 M&A를 총괄하고 있다.
2014년 8월 삼성전자는 신용카드 업체 비자, 싱크로니와 함께 공동으로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 루프페이에 투자했다.
투자 이후 삼성전자는 루프페이의 특허를 삼성페이에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기술과 인력 모두를 M&A 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M&A 테이블에 나서 협상을 진행하거나 막후 협상을 위해 인맥을 동원해 해당 업체 CEO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은 사례도 있다.
사장 시절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진행한 한계 사업 정리는 그룹 전체로 확대됐다. 화학ㆍ방산 부문을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매각하면서 그룹 내 화학과 방산 사업을 정리했으며, 옛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을 통합하면서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계열사 사업 정리, 자회사 지분 이동, 스포츠단 소관 변경 등 소규모 사업 정비도 실시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명확한 사례를 밝힐 수는 없지만 중요한 M&A인 경우 직접 협상을 진행하거나 정보기술(IT) 업계 인맥을 동원해 막후 협상을 진행하는 사례도 많다"면서 "한계 사업은 신속하게 정리하는 대신 신규 사업에선 속도를 내기 위해 스스로 M&A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