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기업 구조조정 타깃 자금지원…정부·한은 발권력 동원 놓고 입장차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정현진 기자] "판은 벌려놨는데 실탄은 어떻게 채우나"
해운,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급류를 타면서 실탄이 되는 재원 마련이 난제로 떠올랐다. 판은 벌려놨는데 각 기관마다 재원을 선뜻 부담하려고 하지 않는 모양새다. 현재로서 정부는 국회의 지난한 동의 절차가 필요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국채발행 같은 재정투입보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재정지원의 경우 국회동의를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재정지원의 당위성과 적정성, 지원방법, 절차 등에 대해 일일이 야당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한은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아직 여와 야가 합의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선뜻 금융통화위원 7명의 합의만으로 발권력을 내준다고 하기엔 저항도 클 뿐더러 명분도 서지 않는다.
"양적완화가 아니라 구제금융아닌가요?" 한국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발권력 동원을 골자로 하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작명부터가 잘못됐다며 이같이 일갈했다. 특정 기업의 구조조정을 타깃팅을 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거시경제정책인 양적완화보다 구제금융에 더 가까운데 용어를 잘못 만들어 문제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 정부가 주장하는 '선별적 양적완화', '한국형 양적완화'는 한은 특별융자(특융)와 더 가까운 개념이다. 한은법 66조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 4명의 찬성으로 '자금 조달 및 운용의 불균형으로 유동성이 약화한 금융기관'에 긴급 여신을 할 수 있다. 1985년 도산위기 해외 건설사 및 해운사 지원, 97년 은행ㆍ종금사ㆍ증권사 지원, 2008년 은행권 자본확충펀드 지원 등은 한은특융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현 상황이 한은특융을 동원해야 할만큼 시급한 상황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산은을 통해 특정기업에 지원을 하는 것 자체가 통상분쟁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금융안정기금 등 다른 대안보다는 정부의 출자를 통해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선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전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한은에겐 부담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나서 국공채 매입을 대대적으로 하는 방식의 '양적완화'를 했을 뿐 특정산업을 타깃팅하는 정책을 펼치진 않았다. 중국 인민은행(PBOC)의 회사채매입이나, 일본 중앙은행(BOJ)의 부실채권 매입 등이 유사한 사례로 거론되나 그 효과와 타당성에 대해선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구조조정 확충방안은 오는 4일 열릴 예정인 '국책은행 재원확충 테스크포스(TF) 회의'가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발권력을 가진 한은의 부담이 크다. 한은은 중앙은행이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례가 있는지 그에 따르는 부작용은 없는지 데이터베이스를 모으며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모인다. 구조조정 방향 설정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위한 첫 실무진 회의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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