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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가장 리얼한 '부부 포르노 영상'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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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쁨의 '문학奇行' - 김수영의 시 '성(性)'

[아시아경제 이기쁨 기자] 한국 참여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시인 김수영은, 그 치열한 솔직함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그려놓은 시는 두고두고 화제다. 불륜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고, 섹스 중의 심리상태까지 리얼하게 드러낸다. 이 정도 고백하는 용기가, 그의 시들 속에 들어있는 언어의 생생한 불꽃을 댕겼을 것이다.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 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또 속고 만다


- 김수영의 <성(性)>


단군 이래 가장 리얼한 '부부 포르노 영상' 한 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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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시인총서>(1974)에 제 1번으로 실린 김수영시선 <거대한 뿌리>에 나오는 시다. 대학시절 나는 저 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저 쑥스러운 문장들이 성교육의 가장 전위적인 선생님이었다. 구성애보다 더 힘있는 강의였다.


저 시 속에 들어있는 “반시간도 넘어”라는 시간기준, '혓바닥 이론', 개관과 둔감, 연민과 황홀, 쏟기와 오래 끌기, 지독하게 속이기 따위의 세밀한 가르침이 성관념의 8할은 아니더라도 5할은 밑줄 치게 한 공신이지 싶다.


“그것하고 하고 와서”라는 말은 너무 정직하고 위험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하고 온 사실을 세상의 그 많은 김수영 독자에게 공개해버리는 저 ‘자기 죽임’의 용기는 무얼까? 대체 어쩌자고 저토록 솔직한 것일까? 인간 행위의 범칭인 '하다'가 '섹스하다'라는 특별한 뜻으로 유통되게 된 것은, 성에 대해 갖는 인간의 본능적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에 붙는 명사인 '섹스'를 굳이 발음하기 민망해서 그 말을 쑥 빼버렸다. 그러고는 앞 글자 '하'에 힘을 줘 뭔가 생략됐다는 느낌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그 뜻을 전달한다.


그런데 그렇게 쓰다 보니 인간만큼 많이 '하는' 동물은 없게 됐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것하고”라는 말에 담긴 불안과 은밀, 문제를 축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상을 깔아뭉개는 '그것'이라는 표현은 읽는 사람을 일단 웃겨놓는다. 그리고 '하고'와 '하고'가 겹쳐 희한한 말맛을 만들어내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김수영은 정말 언어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다.


그리고 첫 연에서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달리 그 외도시간에 관해 중언부언 횡설수설하는 문장들은 한 사내의 민망하고 혼미한 머리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왔다 갔다 하는 저 진술들은 시인 화자를 오입쟁이 악당으로 만드는 대신 측은지심과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일단 '인간' 취급 정도는 해주고 싶도록 만드는 귀여운 대목이기도 하다.


두 번째 연에서 '그년'과 '여편네'를 비교하는 성적 고백도 처음 들어봤다. 다시 듣기도 어려울 것이다. 성이 지닌 본능적 양상과 나이 들어가는 남자의 '눈물겨운 서비스 정신'이 행간에 꿉꿉하게 밴다. 그뿐인가? 성 행위가 2000만 화소라면 그 중에 1999만은 상상과 환상의 알갱이들로 이뤄져 있고, 나머지 1만 정도가 무뚝뚝한 신체행위와 상호 교환이라는 점을, 3연과 4연은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황홀과 기만은 저 1999만 화소 속에서는 동의어다.


성은 그냥 본능이 인간을 아무 생각 없이 미치게 하는 '맹목의 드라이브'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며, 어쩌면 상대를 읽어냈다고 믿는 그 속셈들과 이번에는 어떻게 해줘야지 하는 '서비스'와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는 '무모한 과시'까지 다 포함돼 있다. 알파고와 바둑을 두는 것처럼, 온갖 잔머리를 굴리고 또 뒤통수를 치기도 하는 것이 성관계임을 김수영은 보여준다.


마지막 연은 어떤 포르노 영화의 마무리 처리보다 더 '처연한' 그림으로 남는다. 그것은 오르가즘에 관한 통찰이다. 쏟고 어쩌고 하는 것이 뭔지, 너무도 젊었던 내가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르지만 말이다.


절정을 미루고 쾌감을 극대화하려는 노오오오력이 자칫 지나쳤다가는 '쑥스러운 결론'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저 충고는, 웬만한 성교육보다 훨씬 실속 있는 수업이라는 것은 알겠다. 아니 모르겠다. 자기와 비교해보면서 마음 군데군데가 찔리는 것이 있다면,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시는 대성공이렷다. 잘 만들어진 명품 '부부 포르노' 한편을 대시인께서 우리에게 툭 던져두고 갔다.






이기쁨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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