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만들어주지 않고 지침만 만드는 정부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고, 설탕·소금은 적게, 단 음료 대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지침이 나왔습니다. 보건복지부(장관 정진엽) 등은 8일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민 공통 식생활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지침은 정부부처에 분산돼 있던 지침을 종합해 식생활을 위한 기본 수칙을 제시한 것입니다. 균형 있는 영양소 섭취, 올바른 식습관과 한국형 식생활, 식생활 안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침은 총 아홉 가지 항목으로 돼 있습니다. 우선 쌀·잡곡, 채소, 과일, 우유·유제품, 육류, 생선, 달걀, 콩류 등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자고 권했습니다. 둘째 아침밥은 꼭 먹고 셋째 과식을 피하고 활동량을 늘리자고 주문했습니다.
넷째 덜 짜게, 덜 달게, 덜 기름지게 먹고 다섯째 단 음료 대신 물을 충분히 마시자고 당부했습니다. 여섯째 술자리는 피하고 일곱째 음식은 위생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마련하자고 밝혔습니다. 여덟째 우리 식재료를 활용한 식생활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 .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횟수를 늘리자고 덧붙였습니다.
이 같은 생활지침이 나온 것은 국민들의 식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지 않으니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정크 푸드가 일반화 됐고 맵고 짠 음식이 길거리 곳곳에 가득합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같은 국민 식생활 습관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는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즈음 시골 길을 운전하다 보면 100m 간격으로 편의점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에 편의점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 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 아닙니다. 이 같은 환경은 곧바로 우리 식습관에 영향을 끼칩니다.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적으로 식재료비는 줄고 외식비는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식재료비의 80%는 슈퍼마켓에서 소비됩니다. 맛이나 품질보다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선택 요인입니다. 질 좋은 식재료보다는 값싼 식품을 산다는 것이죠.
정부는 이번 지침을 내놓으면서 아침식사 결식률 증가와 가족 동반 식사율 감소 등이 문제점으로 분석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 5명 중 1명 이상(24%)이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는 비율은 2005년 76%에서 2014년 61%로 낮아졌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현실을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입시 교육입니다. 대학에만 보내기 위한 교육에 집중돼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의 아침 식사 결식률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 7시에 등교해 밤늦은 11시까지 학교에서 입시 공부에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급식으로 점심과 저녁을 먹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좋은 식재료로 아이들의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는 학교도 있겠는데 대부분 단가에 맞추다보니 인스턴트 식재료 등이 주류를 이룹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침식사를 거르지 말고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주문하는 것 자체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활용한 식생활을 즐겨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을까요? 우리 농토에서 나는 식재료가 가장 신선하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식품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거리를 말하는 '푸드 마일(food-mile)'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푸드 마일이 짧으면 짧을수록 신선한 식재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우리 식재료 공급 시스템은 푸드 마일이 매우 깁니다. 몇 단계의 중간 유통업자를 거치면서 이뤄집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멉니다. 이런 유통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데 정부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농산물에 대한 가격도 문제입니다. 제철 채소와 과일을 먹는 것은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현실은 기후변화와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 등으로 가격이 들쑥날쑥 합니다. 갑자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구입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이 틈을 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해외의 값싼 농산물 등은 물밀듯이 국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정부가 저지른 일입니다. 이런 마당에 비싼 국내 농산물을 사먹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라고 한다면 이는 후안무치한 태도입니다.
국민들이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값싸고 신선한 식재료가 넘쳐나는 시장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짧아져야 합니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지침을 만들기 이전에 이 같은 정책을 먼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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