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 - 오늘 타계 17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목성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평화로운 비행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인공지능 컴퓨터 '할 9000'이 반란을 일으킨 것. 고장이 난 컴퓨터는 자신을 정지시키려고 하는 승무원을 우주로 던져버린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이다.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도 전인 1968년 개봉한 이 영화는 컴퓨터그래픽(CG)도 없이 미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미래로 표현된 2001년은 이미 과거가 됐고 큐브릭이 세상을 떠난 지도 17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인공지능 컴퓨터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7일은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17주기다. 큐브릭은 1999년 3월 7일 영국 런던 근교 하트퍼드셔의 자택에서 향년 70세로 사망했다. 그는 인간성을 훼손하는 문명, 전쟁, 기술 등에 대해 날선 비판을 담은 16편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스타일을 창조한 SF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인공지능 컴퓨터 할 9000의 역할이다.
인터넷의 개념이 막 태동한 60년대 후반 큐브릭은 당시의 수준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상상했다. 할 9000은 할 시리즈 중 오류가 발견되지 않은 기종으로 묘사되며 인간과 체스 게임도 하고 사적인 대화도 나눈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컴퓨터의 지능이 아니다. 할은 자신을 불신하는 인간을 내쫓기도 하고 상황이 불리하자 화해를 청하기도 한다. 기능을 정지시키자 전원이 꺼지며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생각하고 감정을 가진 존재로 인공지능 컴퓨터를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빌 게이츠는 1997년 미국과학발전협회 회의에서 2011년까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처럼 듣고, 보고, 말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의 '시리(Siri)만 봐도 듣고, 보고, 말할 수 있는 컴퓨터는 먼 미래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처럼 생각을 하고 감정을 가진 컴퓨터는 요원하다.
최근 컴퓨터가 이른바 '생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느냐'를 두고 세기의 대결이 열린다는 소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벌이는 바둑 대결이다. 알파고는 지난해 유럽에서 활동하는 바둑기사를 꺾고 세계 정상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체스나 퀴즈 등에서 컴퓨터는 이미 인간을 이겼지만 바둑은 워낙 복잡하고 경우의 수가 많은 까닭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알파고는 바둑돌의 위치를 보고 다음 돌을 예상하며,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유리한지 판단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3000만개의 바둑돌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훈련되고 계속되는 반복 대결을 통해 학습되고 있다. 지더라도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강해지도록 만들어졌다. 이세돌 9단은 승리를 낙관한다. "지금 단계에서 인간이 진다면 너무 슬픈 일"이라고도 했다. 이번 대결에 대해 결과에 따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에 어느 정도 접근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전평이 많다. 하지만 설령 이세돌 9단이 진다고 해도 알파고가 할 9000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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