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인기로 이성계와 이방원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 둘의 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자성어 중 하나가 '함흥차사'죠. 한 번 가면 소식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함흥차사는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이방원에 분노한 태조 이성계가 궁을 떠나 함흥에 머물렀고, 아버지로부터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방원이 아버지를 다시 궁으로 데려가기 위해 차사를 보내 설득하지만 오는 족족 이성계가 죽여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습니다.
그런데 이성계가 함흥차사를 죽였다는 것은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아닙니다. 실록에 따르면 함흥에 갔다가 목숨을 잃은 박순과 송유는 당시 안변부사 조사의가 일으킨 반란군에게 죽었다고 합니다. 이성계가 머물던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이 난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하들을 함흥에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이방원은 함흥에 차사를 보냈고 반란군에 막혀 발길을 돌린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성계를 만난 뒤 무사히 돌아왔다고 합니다. 난이 평정된 뒤 이성계도 수도로 돌아왔습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잘못 알려진 것은 야담집 '축수편' 때문이라고 합니다. 함흥에 차사로 간 성석린이 이성계를 만났는데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의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해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성석린은 이성계가 안변과 소요산에 있을 때 차사로 갔을 뿐 함흥에 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함흥차사가 역사적 사실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수많은 함흥차사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선거 때면 그럴싸한 공약을 내놓지만 정작 여의도에 가면 감감무소식인 정치인들이 대표적이죠. 다가오는 4월 총선, 혹시 함흥차사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