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복면가객

시계아이콘01분 09초 소요

[초동여담]복면가객 임훈구 편집부장
AD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른 뒤 전문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판정단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음악 경연에서 오랫동안 왕좌를 지켜온 뮤지컬 배우가 홍대 인디밴드의 보컬로 추정되는 로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나는 이 TV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딸과의 소통을 위해 보는 편이다). 도전자는 신해철이 넥스트 시절 작곡한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가왕은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택했다. 두 곡의 스타일을 볼 때 승부는 이미 선곡에서 갈렸다.


신해철은 대학가요제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룹 넥스트 해산 후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건방진' 음반을 통해 자신이 철학을 전공한 인텔리겐치아 양아치임을 선언하듯 노래했다. 유재하는 조용필과 김현식의 그늘에 '가리워진' 가수였다. 솔로의 길을 택한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음반을 통해 자신의 발라드가 클래식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수줍게 고백하듯 노래했다. 이 둘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굳이 둘 중의 한 명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다. 한국의 발라드가 더 이상 서양의 발라드에 열등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온전히 유재하 덕분이다. 불우했던 그의 생은 찬란한 사후로 보상받는다. 그의 이름을 내건 음악제가 열리고 실력파 가수들이 하나둘 뒤를 따랐다. 발라드 하면 떠오르는, 노래 좀 부른다는 가수 중에 유재하의 영향 아래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그들은 서로 유재하에게 영향받았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국 가요사에서 김현식(1958~1990), 유재하(1962~1987), 김광석(1964~1996), 신해철(1968~2014)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들에게는 때 이른 죽음 말고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술이다.


김현식의 음주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퍼마시다 퍼마시다 결국 간 경화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술값 잘 내기로 유명했던 유재하는 술 취한 친구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광석은 바쁜 친구의 스케줄 때문에 술 약속이 펑크 나자 집에서 아내와 술 마시고 세상을 등졌다(지금까지는 그렇게 알려졌다). 신해철은 '쓸개 수술' 후 주량이 줄었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닥치고 마셔'를 연발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은 가왕이 아니라 가객들이다. 이들을 기리며 술 한잔 해야겠다. 오늘 밤의 사운드트랙은 '넋두리'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절망에 관하여'이다.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