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줌마'가 만들어주는 삼시 세끼도 거부할 할아버지가 있다. 주인공은 강원도 화천군에 살고 계신 박병구 할아버지(1929년생·만 86세). 박 할아버지는 삼시 세끼 라면만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다. 4일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따르면 2014년 국가별 라면 소비량은 중국(홍콩 포함)이 444억개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인도네시아(134억개), 일본(55억개) 등으로 한국(36억개)은 7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한국이 연간 72.4개로 세계 1위다. 5일에 한 끼는 라면을 먹는 셈이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이 55~56개를 먹는 것과 비교도 높은 수준이다.
한국 사람들이 유독 라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박 할아버지의 라면 사랑엔 사연이 있다. 1972년경 음식을 전혀 소화하지 못해 할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몸에 좋다는 약과 음식을 구해 먹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은 우연히 라면이었다. 별 기대 없이 먹었던 라면이 할아버지를 살렸다. 아무 것도 게워내지 않았고 몇 년 만에 포만감까지 느꼈다.
박 할아버지가 처음 맛 본 라면은 농심 '소고기라면'이다. 소고기라면이 단종 되고 나서부터는 '안성탕면'만 고집한다. 할아버지는 다른 회사 라면도 먹어봤지만 농심 라면만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 입에 잘 맞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원래 한 끼에 라면 두 봉지를 끓였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할아버지의 연간 라면 소비량은 일반 사람들이 40년 동안 먹는 라면 개수(2896개)에 가까웠다. 1972년부터 40년 간 할아버지가 먹은 라면의 수를 계산해보니 연간 2190개였다. 최근엔 노쇠해지면서 한 끼에 라면 한 봉지로 줄였다.
할아버지의 라면 조리법은 독특하다. 우선 라면을 끓인 후 찬물을 붓는다. 그리고 수프를 뿌려 비벼 먹는다. 요즘엔 따끈한 국물을 버리지 않고 조금 남겨 먹는다고 한다.
삼시 세끼 라면만 먹고도 장수한 할아버지를 보면서 '된장의 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안성탕면은 다른 라면에 비해 된장 함량이 20% 이상 많아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미수(米壽)를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최근 건강이 조금 불편졌다고 한다. 할아버지 대신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최근 귀가 잘 안 들리고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이경희 moda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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