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육포)이나 장조림보다 더 좋은 거 같더라. 고추장은 내가 직접 담근 거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멀리 시골에 사는 다정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보냈을 것 같은 편지의 일부 같지만 이 편지를 쓴 주인공은 조선후기 <열하일기>의 저자인 연암 박지원이다. 사극 드라마에서 명문가의 집안 남자들이 보여주는 권위를 생각하면 양반이 고추장 담그고 밑반찬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보냈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많은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건 시대에 상관이 없고 남녀의 구별이 없나 보다. 연암 박지원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맛을 탐닉하는 요리하는 남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요즘 요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먹방’에서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쿡방’으로 변하며 ‘쿡방’의 중심은 남자들이 되었다. ‘차줌마’는 대충대충 재료들을 넣어 뚝딱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낸다. ‘집밥 백선생’은 주부들 사이에서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배워야 할 요리법을 친절히 알려주는 온 국민의 요리 선생님이 되었다. 이제 요리는 남자들도 갖추어야 하는 또 하나의 ‘스펙’이 되었다.
꽈리고추멸치볶음
그러나 현실을 좀 다르다. 아직도 부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남자들이 많고 먹고 싶은 요리를 고를 권한만 가지고 있으며 요리하는 일이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쉬운 줄만 안다. 요리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쉽지만은 많다. 쿡방은 다시 돌려 보기를 할 수 있지만 요리하기는 언제나 생방송이다. 요리는 메뉴를 정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음식을 만들어야 하며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노동이다. 잘 갖추어진 주방도 아니고 부족한 식재료도 많으며 설탕만 넣으면 모두 맛있어질 것 같지만 맛내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요리는 우리의 일상처럼 평범하고 소소하지만 매일 세 끼를 차려 내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상의 작은 일들이 큰일을 이루어 내듯 가정에서는 주방에서부터 모든 게 이루어진다. 주방은 여성만의 공간이 아닌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 되었으며 요리는 여성만의 영역 아니다. 이제 남자든 여자든 주방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가정의 리더가 될 것이다. 쿡방에서 만나는 셰프들처럼 대단한 요리 실력을 갖추지도 못해도 우리 가족을 위해 함께 요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밥상에 반찬부터 덜어 놓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는 진정한 요리하는 남자들을 만나고 싶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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