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 "내 할머니라고 생각했으면 그렇게 듣는 걸로 끝냈겠냐"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나이도 많고 죽을 날 가까워 오니깐 이 정부에서 잘 해주시겠지 하고 믿고 있었는데... (중략) 요즘 실망해서 밥도 못 먹어요. 너무 분하고, 너무 부끄럽고... 우리가 잘못해서 이랬습니까? 우리가 잘못했다면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지도 못해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해서 여자가 지켜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정조를 못 지키고 예도 못 지키고 도덕성, 인간의 법,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여자로서의 인권을 짓밟히고. 구사일생으로 살았을거야. 여기계신 사람들."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유희남 할머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한일 양국 정부의 위안부 협상 이후 겪고 있는 고통을 토로했다.
유 할머니는 "어린애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서 그렇게 고통 받고... 해방됐는데도 부끄러워서 고향에 못 돌아가고, 객지에 살면서도 누가 내 신분을 알까봐 항상 부끄럽고 괴롭게 살았다"고 말했다. 죄없이 끌려간 뒤, 죄인처럼 살아왔던 그동안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할머니는 "마지막에 정부에서 도와줘서 사는 보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도 없게 됐다"며 "정부에서 늙은이들 그만치 생각해줬으면 어련히 하시겠지 하고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았는데, 이번에 일처리를 보니 정부가 할머니들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의 할머니라고 할 거 없이 내 할머니, 내 어머니라고 생각 봤다면 그렇게 무관심하고 남의 일 생각하듯이 그렇게 듣는 걸로 끝나고 말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유 할머니는 "부끄러운 건 대한민국 정부고, 남자들이(이어야)지. 분하기만 하지,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배웠으면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억울하게 남의 인생을 짓밟아놓고 이놈(일본정부)들이 할 말이 없으니 그러는 거야"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 딸들을 지키지 못한 나라 정부가 부끄러워해야하고, 대한민국 남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할머니에게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고도 했다.
문 대표는 다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이제 49분만 남은 이순간까지 위안부 문제를 해결 못해서 정말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재단설립을 위한 100억원 모급 계획을 밝힌 것 등을 소개하며 "반드시 할머니들 명예가 회복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표는 "담에 올 때는 좋은 소식을 갖고 오겠다"며 "그때까지 돌아가시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한다"고 부탁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