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제품 생산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수직통합을 이루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현대자동차처럼 원재료인 철강생산부터 자동차의 생산, 물류, 그리고 판매까지를 모두 내부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현대자동차는 현재 매우 높은 수준의 수직통합을 이루고 있는 편이지만, 포드자동차의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한때 포드는 광산업, 고무나무 농장, 그리고 물류를 위해 철도사업까지 했으니까요.
수직통합은 공급처의 위험을 줄이고 품질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수직통합의 단점이 부각되었습니다. 수요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모든 것을 통합한 기업은 유연성의 감소로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사업의 범위를 축소하면서 가치사슬상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모듈화'라고 하는 제품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은 모듈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경우, 표준화된 부품들을 사서 직접 조립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한 제품의 구성품이 표준화된 몇 개의 뭉치로 나눠져 있는 것을 '모듈화'라고 부릅니다. 모듈화가 높아지면 하나의 기업이 모든 구성품을 다 만드는 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모듈에 집중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컴퓨터를 다시 예로 들면 인텔은 CPU만 만들고, 삼성이 RAM을, 아수스는 메인보드를 만드는 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분해의 흐름에 반대되는 소식들이 자주 들려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한 비디오 스트리밍 회사 넷플릭스는 분명히 콘텐츠 유통회사지만, 최근 몇 년간 직접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은 당연히 외부에 맡기는 일이라고 치부되었던 배송을 내부화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올 초에 직접 이동통신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 수직통합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모양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기업들입니다. 전기자동차 기업인 테슬라는 딜러에 의지하는 전통적인 미국의 자동차 유통망 대신 직접 유통망을 구축했고, 배터리 공장도 직접 짓기로 했습니다. 머스크의 우주개발기업인 스페이스X는 더 극단적입니다. 발사체와 우주선을 모두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의 부품도 다 직접 설계하고 제작합니다. 말하자면 극단적인 '역모듈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역모듈화, 혹은 통합화의 가치는 명백합니다. 지난 21일, 스페이스X는 위성 11개를 궤도에 올리는 데 쓰인 발사체(로켓) '팰콘9'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 동안 우주 발사체는 일회용이었고, 그래서 우주로 사람이나 물건을 보내는 데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공을 계기로 발사체의 재사용이 가능해짐에 따라 우주시대는 한층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 같은 성공은 스페이스X의 발사체와 우주선들이 기존의 제품을 기반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가장 성능이 우수하도록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설계된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매우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는 수직통합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면, 이에 가장 긴장해야 할 나라는 우리나라일지 모릅니다. 모듈화의 시대는 효율적인 조립능력과 글로벌 소싱 능력이 뛰어난 기업에게 유리합니다. 혹은 특정 모듈을 저가격 고품질로 만들어내는 품질관리능력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이런 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직통합의 시대에는 새로운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대규모의 정보를 기반으로 통찰력을 만들어내며, 대규모 위험자본을 장기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에게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회를 노리려면 훨씬 큰 위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지요. 흥미진진하고도 조마조마한 2016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