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지만 조선업계는 노사, 협력업체 가리지 않고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위기지만 여전히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주잔량, 신뢰를 바탕으로 믿고 맡기는 고객사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저력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노조도 달라지고 있다. 경영실패를 무턱대고 비판하기 보다 임금동결 등 자발적으로 위기극복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이 내놓은 10월 보고서를 살펴보면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선박 수주잔량 부분에서 세계 1~5위를 독점하고 있다. 수주잔량이 많다는 건 확보해놓은 일감이 많다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의 수주잔량은 10월 말 기준 131척, 843만7000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로 세계 조선소 가운데 가장 많다. 지난해 11월 수주잔량 1위에 오른 후 계속해서 1위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는 111척, 528만1000CGT로 수주잔량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91척, 507만8000CGT)였다. 현대중공업은 4, 5위를 차지한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 현대삼호중공업(89척, 384만6000CGT), 현대미포조선(131척, 292만9000CGT)까지 더하면 확보해놓은 일감이 가장 많다.
국가별 전체 수주잔량은 중국이 3933만CGT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는 3191만CGT로 2위를 차지했다. 다만 10월 한 달 간 수주량은 한국이 4개월 만에 월간 수주실적 1위에 복귀했다. 10월 국가별 수주량은 한국이 76만CGT, 중국이 23만CGT에 달했다. 일본은 수주실적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1~10월 누계 수주실적에서도 한국은 979만CGT로 중국(704만CGT)과 일본(654만CGT)에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신뢰를 다진 고객사들도 국내 조선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최악의 적자를 내고 경영정상화에 나선 대우조선해양이 수주를 본격 재개한 곳은 오랜 고객인 그리스 안젤리쿠시스 그룹 산하 마란 탱커스사였다. 안젤리쿠시스 그룹은 올해 1월과 4월에도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발주를 맡긴 바 있다.
노조도 변하고 있다. 경영난에 따른 구조조정에 무작정 반기를 들기 보단 같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 모색에 힘을 쏟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사와 협력업체 전 직원이 합동 토론회를 열고 조기 경영정상화 방안 고민, 다짐들을 되새긴 것은 과거 조선업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STX조선해양을 시작으로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부분의 조선사가 큰 갈등 없이 임금 동결에 합의한 것도 달라진 노조 분위기를 대변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자의든 타의든 조선업 자체가 힘든 만큼 임원을 비롯해 근로자들도 희생에 동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깔려있다"고 전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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