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홍유라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인 '통합과 화합'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힘을 모으고, 여러 해묵은 인연도 풀려가는 모양새다.
지난 22일부터 전날까지 1만2000여 명이 다녀갔던 추모 열기는 24일 다소 한산해졌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조문객은 60여 명 남짓이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이란 메시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정파를 떠나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그가 남긴 메시지를 실천하는 양상이다.
우선 상도동과 동교동이 힘을 모은다. 김 전 대통령 측은 23일 장례식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주도로 치러지고, 동교동 인사가 포함된 민추협 추천 300여명의 장의위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에 정부 측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가족들을 장의위원으로 추천하고 이를 김 전 대통령 측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한 대규모 장례위원이 꾸려질 전망이다.
이같은 통합의 분위기는 동교동 인사들의 적극적인 조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23일엔 고인의 라이벌 이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차남 홍업씨,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조문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이 여사는 고인의 부인인 손명숙 여사에게 "위로 드립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손 여사는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화답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해묵은 악연을 털어내는 자리도 됐다. '와이에스(YS) 허수아비 화형식' 등으로 관계가 틀어졌던 이회창 전 총리도 빈소를 찾았다. 방명록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고 적었다. 이 전 총리는 "물을 마시면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뜻이다"라며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어 존재를 잊기 쉬운데, 김 전 대통령과 같이 역할을 한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22일 빈소를 찾았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저희 아버님(고 정주영 명예회장)하고 김 전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친했었다"며 "좋은 관계를 끝까지 계속 하도록 제가 잘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해 어색한 관계를 이어갔던 박근혜 대통령도 조문했다. 박 대통령은 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ASEAN) 관련 정상회의 순방 일정을 마치고 23일 오전 귀국한 직후, 오후 2시 빈소를 찾았다. 박 대통령은 손 여사와 차남 현철씨의 손을 잡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오는 26일 국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상도동계 막내'로 통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전 8시 44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찾았다. 상주를 자처하며 줄곧 빈소를 지켜온 김 대표다. 또 다른 상도동계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이틀 연속 빈소를 방문했다. 박 전 의장은 김영삼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의 조문도 잇따랐다. 김영삼정부의 IMF 때 위기 수습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임창렬 전 부총리가 다녀갔다. 1994∼1995년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홍구 전 총리도 빈소를 찾고 조문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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