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써준 것 안 밝히는 건 소비자 기만행위
[아시아경제 최서연 기자] 법원이 돈을 받고 홍보성 글을 올리는 블로거지들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렸다.
서울고법 행정7부(황병하 부장판사)는 13일 블로거에게 돈을 주고 홍보성 글을 올리게 하면서 이를 밝히지 않은 것은 기만적인 광고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런 형태의 매체(블로그)일수록 진실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 소비자 구매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받으므로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이 블로그 마케팅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블로그를 활용했던 업체들의 마케팅 방식이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업체들은 블로그를 통한 홍보에 만전을 기했던 기존의 홍보 방식에서 아직 규제가 없는 인스타그램으로 옮겨 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팔로워수를 늘려 협찬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일컬어 인스타거지(인스타그램+거지)라는 말도 생겼다.
카페, 레스토랑, 화장품, 패션 등 다양한 업계에서는 그동안 파워블로거들에게 자사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홍보를 해왔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은 파워블로거로 하여금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후기를 올리도록 하고 블로그 게시물에 대해서는 비용도 지불했다.
그러나 이러한 칭찬 일색의 대가성 게시물과 광고가 넘쳐나자 소비자들의 불신은 커졌다. ‘블로거지(블로거+거지)’라는 비아냥 섞인 신조어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광고성 게시물이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를 막는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1년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제정해 협찬 등의 경제적 대가를 받아 쓴 글을 명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를 밝히지 않은 마케팅 활동은 여전하다. 지난 2014년 오비맥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등이 제제를 받았고 올 1월에도 보령제약, 소니코리아 등이 블로그에 광고글을 게재하며 협찬 사실을 밝히지 않아 철퇴를 맞았다.
규제가 생기면서 기업들의 파워블로거를 대상으로 한 블로그 마케팅은 대폭 줄었다.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자체가 객관성과 신뢰도를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홍보 채널을 바꿔 인스타그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블로그의 인기가 떨어지고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기업 광고뿐만 아니라 해시태그(#)를 이용한 제품 홍보성 포스팅이 넘쳐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개정한 '추천ㆍ보증에 관한 표시ㆍ광고 심사 지침'은 블로그나 카페의 경우 돈이나 제품 협찬을 받아 글을 올릴 때 이런 내용을 정확히 명시해야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협찬 포스팅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홍보업계 관계자는 "최근 블로그를 통한 홍보 대신 더 많은 이용자들이 활용하고 주 사용 연령층이 젊은 세대인 인스타그램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매 영향력이 있는 유명 인스타그래머(인스타그램 사용자)나 스타에게 제품을 협찬하고 이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도록 하는 방식인데 실제로 홍보효과가 좋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블로거지'라는 말이 생기는 등 파워블로거들에 대한 대가성 협찬 등에 대한 불신과 문제로 규제가 생긴 것인데 결국 이를 피해 똑같은 상황이 다른 SNS 채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에는 SNS 채널이 다양한 데다 수많은 업체들이 이러한 바이럴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어 사실상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서연 기자 christine8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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