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1922년 1월. 캐나다 토론토에 살던 14살 소년 톰슨은 인슐린 주사를 맞았다. 톰슨은 세계 첫 인슐린 주사를 맞은 사람이다. 주사를 맞기 전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톰슨은 식욕이 돌아오는 등 빠르게 회복했다.
이듬해 인슐린을 처음 발견한 캐나다의 의사 F. G. 밴팅 등은 노벨상을 받았다. 인슐린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호르몬으로, 우리 몸에서 포도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인슐린이 부족한 증상이 바로 당뇨병이다.
'평생의 동반자'라고 불리는 당뇨병은 죽을 때까지 완치가 어렵고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매일 날카로운 주사바늘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가 주사 맞는 시간을 놓치면 혈당 관리에도 문제가 생겼다. 거르지 않고 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급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당뇨병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한미약품이 최근 6조원 상당의 바이오신약 기술수출 '대박'을 일군 배경에는 '랩스커버리'라는 독자기술이 큰 몫을 했다. 랩스커버리는 기존에 없던 약물이 아니다. 약물의 전달체계를 변화시켜 약효의 지속시간을 늘려주는 기술이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이나 당뇨치료 주사를 매일 맞지 않아도 된다.
바이오의약품은 약물성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매우 짧아 1~3일꼴로 약물을 주입해야 한다. 하지만 랩스커버리는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GLP-1' 계열 물질이나 '랩스캐리어'라는 단백질을 인슐린 성분에 결합시켜 약제 분자 크기를 키운 기술이다. 분자의 덩치가 커져 체내 주입시 혈관내 상피세포로 흡수돼 분해되는 약물량을 줄일 수 있다. 또 신장여과로 인한 약물감소효과로 약 성분이 체내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이로인해 약물 반감기가 크게 늘어나 오랜 약효 지속 시간을 갖는다. 이 기술을 이용해 개발된 당뇨병 신약은 투약횟수와 투여량을 최소화할 수 있어 부작용 발생률도 낮출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선 고통도 줄이고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랩스커버리 연구는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이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던 2003년부터 시작됐다. 이 사장은 2006년 기존 약물에 특정 물질을 붙여 약물의 반감기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약물의 지속시간이 얼마나 더 오래가느냐다. 지난 13년간 30명의 연구진이 매달렸다. 신약개발에 사용된 연구개발(R&D)비용의 60~70%가 랩스커버리 개발에 투입됐다. 그 결과 약물지속 기간을 대폭 늘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한미약품은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한 6개 제품을 개발했고, 이중 5개를 기술수출했다. 이번에 사노피 아벤더스에 39억유로(4조9000억원)를 받고 기술을 이전한 '퀀텀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GLP-1' 계열의 에페글레나타이드라는 신약은 최장 월1회 투여가 가능하고, 랩스인슐린115는 주1회 투여하면 된다. 랩스인슐린콤보의 경우 에페글레나타이드와 랩스인슐린115을 합친 신약으로 주1회 투여로 기존의 약보다 약효가 좋고, 인슐린 투여에 따른 부작용(저혈당 쇼크, 체중증가)도 크게 줄었다.
또 미국 제약사 얀센에 기술수출한 당뇨비만 신약 'HM12525A'도 마찬가지로 랩스커버리를 적용 주1회만 투약한다. 랩스단백질은 체내 부작용이 없고 당뇨병 신약 외에도 다른 질환 바이오신약 개발에도 접목할 수 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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