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부여 구드래 일원(명승 제63호)에서 백제 사찰 강당(講堂)으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시가지 도로, 토기 및 명문기와 등 유구와 유물이 확인됐다.
부여군과 (재)백제고도문화재단은 지난 4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부여읍 구교리 구드래 일원 유적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17일 오전 10시 30분 개최한다. 구드래 일원은 부소산 서쪽 백마강 나루터 일대를 일컬으며, 구드래 나루는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부여 부소산성, 나성 등을 포함하는 백제 사비도성의 나루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서 1동 2실 구조의 초석 건물지, 도로 등의 백제 유구가 확인되었다. 또 연화문 수막새, 명문와(銘文瓦, 글자가 새겨진 기와), 귀면와(鬼面瓦, 도깨비 얼굴이 장식된 기와), 토제전(土製塼, 흙으로 만든 벽돌), 굴뚝상부장식토기, 전달린 토기, 등잔, 숫돌 등 백제 유물이 출토됐다. 이 중 불교적 기원을 나타낸 ‘一意攸爲(일의유위, 일심(一心)과 유사한 용어)’와 '344'를 뜻하는 수량을 표시한 명문와도 나왔다.
초석 건물지는 익산 미륵사지와 부여 능산리사지의 강당터, 익산 왕궁리 유적 1호 건물터와 유사한 1동 2실 구조다. 재단 관계자는 "북편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 점 등으로 미뤄 볼 때, 역사 기록에서 알려지지 않은 중요 사찰의 강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주서(周書)' 백제조(百濟條)에는 ‘寺塔甚多(절과 탑이 매우 많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찰과 탑이 사비도성에 있었는데, 현재 부여읍과 그 인근에는 25개소의 백제 절터가 존재하고 있어 이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사찰 내에서 예배공간이 금당과 탑이라면, 강당은 생활 수행 공간이다. 주서는 중국 당나라 때의 북조(北周) 25년(557~581년)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로, 백제의 기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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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지는 기둥을 받치는 초석의 배치상태로 미루어 맞배지붕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북편의 낮은 구릉을 일부 ‘L’자로 깎아내고 지면을 정리한 후 축조됐다. 건물지의 규모는 가로 26.6m×세로 15m이며, 동쪽 방은 11m×7.84m, 서쪽 방은 10.7m×7.84m이다. 건물지는 약 30cm의 당척(唐尺, 중국 고대 척의 종류로, 1척은 약 28~31.35cm임)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7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동·서쪽 방의 바닥은 화강암(석영+장석+운모)과 점토를 약 7cm 두께로 다져서 시설했다. 또한 건물 내부로 스며드는 물을 차단하기 위한 점토벽을 설치했다. 동벽과 북벽에 아궁이와 구들 흔적도 발견됐다.
도로시설로는 도로와 도로 남쪽의 배수로, 노면의 수레바퀴 흔적이 확인되었다. 배수로는 원지형을 굴착하여 조성하였으며 내부에는 목탄, 백제 토기, 기와 등의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수레바퀴 흔적은 두 바퀴의 너비가 130cm 정도이다. 이 도로시설은 백마강변에서 사비왕궁으로 향하는 동서도로로 추정되며, 사비도성의 가로체계의 일부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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