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는 오페라의 여신, 불멸의 디바로 평가받는 '세기의 소프라노'다. 오페라를 '비포 칼라스' 즉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그는 전혀 다른 경지의 기량을 선보였고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음악 외에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의 사랑으로도 관심을 끌었고 그가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자 실연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정상급 소프라노로 활동할 당시 95kg에 달하는 몸을 1년여 만에 40kg 이상 감량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16일은 칼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38년이 되는 날이다. 1923년 태어난 칼라스는 부모의 편애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고도 비만에 근시였고 어머니는 예쁜 언니만을 좋아했다고 한다. 노래를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1940년 그리스 아테네 국립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후에도 칼라스는 80kg이 넘는 체중을 유지했다.
1945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고자 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95kg에 달했고 이 때문에 여린 여주인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등 맡을 수 있는 배역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칼라스가 다이어트에 돌입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전해진다. 우선 영화감독 루치아니 비스콘디를 만나면서 자신 안의 여성을 다시 발견하고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감량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비스콘디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이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보다 '로마의 휴일'을 보고 오드리 헵번의 스타일을 소화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것이 더 많이 알려진 얘기다.
여하튼 칼라스는 1954년 극히 짧은 기간에 40kg 정도를 감량하고 이로 인해 외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바뀐다. 하지만 발목은 여전히 굵어 발목이 드러나는 차림은 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칼라스는 오페라 가수는 몸집이 커야 한다는 당시 통념을 깨고 날씬한 몸매에서도 천상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칼라스가 살을 뺀 비결에 대해서도 설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촌충 다이어트'를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기생충 알을 먹은 덕에 짧은 기간에 살을 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칼라스의 남편이었던 그리스 사업가 메네기니가 쓴 책 '마리아 칼라스, 나의 아내' 중에 칼라스가 자신의 몸에서 나온 촌충으로 보고 놀라 의사를 불렀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 설의 근거다.
하지만 칼라스의 감량 비결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고 그는 오나시스가 죽은 지 2년 뒤인 1977년 은둔하던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한편 칼라스를 뛰어넘는 소프라노의 다이어트가 2000년대 들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미국의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였다. 보이트는 2004년 '낙소스 섬의 아드리아네'에서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뚱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당시 보이트의 체중은 127kg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보이트는 위절제 수술을 받아 체중을 61kg 감량하고 배역을 되찾았다고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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