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텔레매틱스 보험'…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
4~5년내 세계 자동차보험시장 25~40% 차지
미국 영국 등 상품개발 적극 나서
한국은 현대해상ㆍKB손보 등 일부 손보사만 취급
국내에선 주행거리 체크해 보험료 할인하는 수준에 그쳐
보험선진국에선 보험료 책정 공정성 높이고 사기방지 효과까지 극대화
[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미국에 거주하는 샘 레이미(가명)씨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서 차량에 텔레매틱스(통신+정보과학) 장치를 부착한 상품을 선택했다. 레이미씨는 시내도로에서 시속 25마일(40㎞) 미만으로 운전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후 9시 이후에는 주행을 안 한다. 대부분 일반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포장길에서 운전할 일도 거의 없다.
급가속이나 급제동, 급코너링도 잘 하지 않는다. 레이미씨는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면서 보험회사로부터 안전등급을 받았다. 보험사는 차량에 부착된 텔레매틱스 장치를 통해 측정한 레이미씨의 운전습관에 근거해 안전등급으로 평가, 연간 보험료를 30% 할인했다. 만약 레이미씨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었을까.
보험 선진국들이 텔레매틱스 기술 발전에 따른 보험상품 개발에 적극 나서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텔레매틱스 보험 판매를 통해 합리적인 보험료 책정과 보험사기 방지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텔레매틱스를 활용한 자동차보험 판매 비중이 향후 4~5년 내 전체 차보험시장의 25~4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텔레매틱스는 자동차에 장착된 통신단말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ㆍ분석하는 시스템이다.
국내에는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 등이 텔레매틱스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텔레매틱스 장치로 자동차 주행거리를 자동 체크해 연간 주행거리가 1만km 이하이면 보험료를 환급해준다. KB손해보험은 마일리지 특별약관을 통해 연간 4000km 이하면 20%, 1만km 이하이면 14%를 할인해준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운전행태연동'을 통해 보험료를 깎아주는 것은 물론 보험료 책정의 공정성을 높이고 보험사기를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정인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텔레매틱스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운전행태연동 자동차보험의 판매 비중이 2012년 2% 정도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2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판매 중인 운전행태연동 보험은 가입 시 10% 선할인을 제공하고 이후 운전성향 정보에 따라 30~50%까지 추가로 할인해준다. 영국도 텔레매틱스 자동차보험시장이 2020년 전체시장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텔레매틱스 보험은 장점이 많다. 보험자의 안전운전을 유도해 손해율과 보험료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복잡한 가격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도 우려된다. 가입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보험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텔레매틱스 보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주행 정보와 주행 패턴을 빅데이터화해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과 상충된다"며 "개인들에게 동의받지 않으면 주행정보 등을 수집하지 못하는데 사생활 노출과 직결돼 정보공개를 꺼리는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험추구 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입자는 보험료가 할인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험료가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며 "텔레매틱스 보험에 대한 특성과 구조를 소비자에게 명확하고 충분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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