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면접의상 대여하는 '열린옷장' 김소령·한만일 대표
취업시즌 구직자들 정장 대여…기증자 옷에 얽힌 사연 등 담아
"옷이 인연이 돼 희망을 나눈다"…감사편지 잇따라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입지 않는 정장을 기증해 꼭 필요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커다란 옷장. 또 옷에 얽힌 기증자의 사연을 전해 들으며 자신들의 도전에 힘을 얻는 사람들. 바로 '열린옷장'이 꿈꾸는 나눔 이야기다.
3년 전 청년 구직자들의 면접 의상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열린옷장 프로젝트는 그간 2000여명의 기증자에 힘입어 규모를 꾸준히 늘려왔다. 기증자의 옷과 함께 옷에 얽힌 사연을 받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단순한 옷 기부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다. 당초 비영리 민간단체로 출발했으나 올 6월 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이 같은 성장 뒤에는 열린옷장을 설립한 김소령(46ㆍ여)ㆍ한만일(35) 대표를 비롯해 무보수로 열린옷장의 일을 도운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지금은 두 대표를 포함 모두 11명의 직원이 열린옷장을 꾸려가고 있다.
2일 김 대표는 "청년 구직자를 위한 정장 대여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이야말로 연령ㆍ계층 상관없이 누구나 찾는 열린옷장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취업면접을 앞둔 이들 뿐만 아니라 경조사나 졸업, 각종 행사, 공연 등 다양한 이유로 정장이 필요한 경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위치한 열린옷장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루 80~100여명. 한 달 기준으로 1500~2000여명 정도로 지난 3년간 대여건수는 2만500여건이다. 남성과 여성을 위한 정장 총 1000여벌(여성용 200벌)이 구비돼있는데 남성용은 구두와 벨트, 넥타이 등 잡화까지 포함하면 총 3500점의 옷이 대여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명품브랜드 정장부터 직접 만든 정장까지 다양한 사연이 담긴 옷들이 속속 이곳에 자리했다. 이 가운데는 개그맨 김준호와 김준현, 양상국 등이 보내온 옷들도 있다. 대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열린옷장 사무실을 방문해 치수를 재고 간단한 상담을 거쳐 원하는 색상과 사이즈의 옷을 빌려갈 수 있다. 대여비 외에 별도의 보증금은 없으며 지방 고객의 경우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치수를 전달하고 택배를 통해 옷을 받아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전국 노래자랑에서 우승할 때 입었다는 옷, 아빠가 입지 않은 정장을 보낸 고등학생, 자신이 직접 만든 첫 정장을 보낸다는 패션디자인과 학생 등 기증자의 사연들은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적이고 다양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김 대표의 마음에 유독 남는 대여자는 휠체어를 탄 채 50대 어머니와 함께 열린옷장을 찾아온 20대 남성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가 정장 반납 후 보내온 감사의 편지에는 남성이 아닌 어머니의 글씨가 담겨 있었다. 정장을 빌린 덕분에 말기 암 투병 중인 아들이 깔끔한 차림으로 가족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는 사연이었다.
김 대표는 "그분이 빌려가신 옷은 개그맨 김준현씨가 기증한 양복이었다"면서 "'살아있는 아들의 모습을 우리가족 모두가 기억할 거예요'라는 문장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낀 때였다"고 회상했다. 열린옷장을 이끌어가는 힘은 무엇보다 좋은 품질의 깨끗한 정장을 합리적인 가격에 빌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정장 상ㆍ하의, 셔츠, 구두, 벨트 등 면접 의상 일체를 빌리는데 3만~3만2000원이 드는데 이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렌털숍과 비교하면 3분의 1 이하 수준의 가격이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취업면접 시즌인 4~5월과 10~11월에는 대여 문의 및 방문이 급증한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대여자의 입장에서 가격을 책정해 운영해온 만큼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진 않다"면서 "사무실 임대료나 옷 세탁ㆍ관리에 필요한 집기 등 상당 부분 역시 다른 분들의 기부에 힘입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린옷장은 현재 온라인 접수와 택배 서비스 등 체계적인 시스템 운영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기증받은 옷을 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ㆍ재활용품에 디자인을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 사업, 기증자 대여자를 잇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개설을 준비 중이다. 한 대표는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열린옷장을 부담 없이 찾아주길 희망한다"며 "나에게 불필요한 옷 한 벌이 누군가에는 희망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