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아저씨를 아십니까?" 대부분의 성인들은 '밥 아저씨'하면 그럴 듯한 풍경화를 뚝딱 해치운 후 "참 쉽죠?"라고 되묻는 둥근 파마 머리의 그림 선생님이 떠오를 것이다. '밥 로스'가 그의 이름이다.
EBS 방송의 '그림을 그립시다' 코너를 통해 신기할 정도로 쉽게 풍경화 그리는 법을 알려준 밥 로스. 지난 4일은 그가 50대 초반에 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실 전통을 중시하는 미술계 입장에서는 밥 로스의 풍경화가 마뜩치는 않았다. 밑그림 없이 채색하는 고도의 기법(알라 프리마 기법)을 아무나 가능한 것처럼 다룬다는 것도 그렇고 '이발소 그림'을 연상시키는 천편일률적인 작화법도 불만이었을 터. 예술 작품을 싸구려 취급한다는 반발심도 자극했을 것이다.
밥 로스의 풍경화는 그의 삶에서 비롯됐다. 20년간 군인으로 복무한 밥 로스는 알래스카 기지에서 근무할 때 풍경화를 본격적으로 접했다고 한다. 군인 신분의 그로서는 당연히 풍경화를 빠른 시간 내에 그려야만 했을 것이다. 그 경험이 쉬운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게 한 셈이다.
새삼스레 밥 로스를 거론한 이유는 종이접기 선생님으로 잘 알려진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이 갑자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 이사장은 1980년대부터 KBS의 'TV유치원 하나둘셋'등 어린이 프로그램을 통해 종이접기 선생님으로 활약했다. 지금의 '뽀로로'처럼 당시 어린이들로부터는 '종이 대통령'으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얼마 전 MBC 예능 프로그램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깜짝 출연한 김 이사장은 실시간 시청률 경쟁에서 1위를 하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방송을 지켜본 20대와 30대들도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같이 눈시울을 적셨다. 그러자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 사이에서 느닷없이 김영만 신드롬이 확산됐다. '밥 아저씨'도 덩달아 되살아났다.
2030세대는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의 길거리 응원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자아실현이 강한 특징을 가졌다. '붉은 악마'가 주도한 길거리 응원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R세대(Red Generation) 또는 W세대(World Cup Generation)라고도 불렸다.
그런 2030세대가 지금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인간관계, 주택, 꿈을 포기한 소위 '7포세대'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2030세대의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현상은 팍팍한 현실에 대한 탈출구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현실을 돌아보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중 구직을 포기한 경우가 지난 6월 기준 44만명에 달했다. 인문계 대졸자 100명 중 54명은 놀고 있으며 2014년 첫 취업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15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시절 힘들게 쌓은 화려한 스펙도 최근 채용 기준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짙어져 취업 준비생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학자금 대출 탓에 사회 진출을 하자마자 자칫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들이다.
2030세대의 처참한 현실은 그들 탓이 아니다. 오롯이 기성세대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5060세대들은 아련한 추억들을 곶감 빼먹듯 되새기며 '복고' 열풍을 즐겼다.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노래가 한때 방송가를 점령했고 추억의 도시락 메뉴가 등장했다. 'X세대'로 대변되는 3040세대는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에 열광하면서 향수를 만끽했다.
그래서일까. 기성세대 입장에서 2030세대의 느닷없는 '복고' 열풍을 마냥 같이 누리기가 불편해진다. 복고 열풍은 부정적이고 힘든 과거는 애써 지운 채 즐겁고 긍정적인 추억을 되쌓으려는 심리가 작용하게 마련이다. 반면 7포세대를 넘어 '다포세대'까지 치닫는 2030세대의 경우 현실도피 차원의 복고 열풍이 될까 우려되는 것이다.
밥 아저씨나 '종이 선생님 김영만'의 등장이 새삼 반갑기는 하나 기성세대가 누린 복고 열풍의 궤적을 비껴가는 2030세대의 모습은 애처로울 뿐이다. 기성세대가 2030세대에게 건네줄 수 있는 행복한 추억 쌓기는 과연 무엇일까. 해답을 찾기가 참 난감한 문제다.
정완주 디지털뉴스룸 국차장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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