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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대한민국과 동물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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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대한민국과 동물의 왕국 박성호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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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숨어 있다. 잘못된 군상(群像)이 아니다. 인간 본성이 그렇다.


탈무드는 "완고하면 안 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쉽게, 화를 내는 건 어렵게 살아야 한다. 상대가 진심으로 빌 경우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성경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용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용서는 구두 굽에 뭉개진 제비꽃이 풍기는 향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용서하지 못해 따라오는 미움과 증오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혼돈을 준다. 깊은 심중에 켜켜이 쌓여 있는 미움으로 길을 잃게 되면 스스로에게 정당한 핑계도 만들어낸다.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어"라고 말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용서가 없으면 끊어지지 않는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저서 '누가 지도자인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동물의 왕국'을 좋아했다고 전했다. 동물은 배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배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나마 배신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기에 인간이다. 배신을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인간뿐이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기에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동물들만 모여있다면 치열한 두뇌싸움과 세력다툼, 정쟁을 통해 지도자를 뽑을 필요가 없다. 힘센 놈이 그냥 두목이고 왕이다.


그렇다고 용서가 망각은 아니다. 잊는 걸 용서라고 한다면 자기 집에 뿌려진 인분(人糞)을 종이로 잠시 덮어놓고 눈길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냄새는 그대로인데.


박 대통령은 지금 상황이 무척 답답하고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 게다. 한 번 말을 뱉으면 지켜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취임 후 경제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자신이 약속한 일들을 100% 지원해주지 않는 새누리당도 미덥지 않다. 청와대의 표현대로 본인은 자나 깨나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는데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대통령 공약을 허구라고 하고 행정부 권력을 통제하는 법에 사인하라고 올렸다. 박 대통령이 볼 때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는 '탐욕(개인정치)'을 부렸다. 진실여부를 떠나서 탐욕이 나쁜 것만도 아니다.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의 명대사처럼 탐욕은 혁신적 정신의 본질을 확인시켜주고 분명하게 만들어주며 인류의 발전을 나타내기도 한다.


물론 박 대통령은 충분히 '배신의 정치'라는 어구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배신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용서하기는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거친 언행을 하면 오히려 자신의 용렬(庸劣)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최소한 주변에 그렇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덩샤오핑은 "냉정히 관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며, 자신을 확고히 하고,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려야 하며,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이룩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금도 중국 외교정책의 근간이다. 정치판에 적용해 봐도 이만큼 교훈적인 어록을 찾기 힘들다.


사심 없이 일하는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행운이다. 꼼수 없는 법과 원칙을 국정기조로 삼는 것도 정당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목자(牧者)를 쫓아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가는 양떼가 될 수 없다.


박 대통령에게는 임기 절반이 남았다. 국정기조인 법과 원칙에 '용서와 화합'을 추가했으면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선 경쟁자였고 후에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힐러리 클린턴의 수석보좌관 셰릴 밀스가 백악관을 떠날 때 작별편지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라이벌로 이뤄진 팀에서 라이벌이 없는 무적의 팀으로 성장했다"고 편지에 적었다. 화합은 시너지효과를 낸다.


어떤 형태의 전투에서도 이기는 것은 지는 것보다 좋다. 하지만 싸울 가치가 없는 전투라면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그리고 때로는 용서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다.






박성호 정치경제부장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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