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칼럼]꼴찌의 원칙

시계아이콘01분 47초 소요

[데스크칼럼]꼴찌의 원칙 전필수 증권부장
AD

지금은 가치투자 대표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A운용사. 펀드 환매 바람에 경쟁사들이 조 단위의 뭉칫돈이 빠져나가는데도 끄떡없을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5~6년 전만 해도 사정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시장이 날라가던 시절, A사의 수익률은 42개 운용사 중 꼴찌였다.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눈뜨고 나면 돈이 빠져나갔다. 사장이 운용본부장을 불렀다. "지금 들고 있는 주식들 그대로 들고 가도 될까?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 봐라."

며칠 후 운용본부장은 "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들고 가도 됩니다"고 답했다.


사장은 "그럼 이 주식들 끝까지 갖고 가자. 안 되면 이 주식 안고 죽자"며 운용본부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시장은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A사의 운용수익률은 꼴찌였다. 바로 앞 순위는 공교롭게도 A사와 가치투자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경쟁사였다. 성장주 위주로 시장이 움직이다 보니 가치주들이 몇 년째 소외를 받았던 것이다.


2년째 꼴찌를 하자 사장은 다시 운용본부장을 불렀다. "정말 그대로 갖고 가도 되는지 재점검 해보자."


며칠 후 운용본부장은 "(가지고 있는 주식들의) 내재가치가 변한 것은 없다"며 그대
사장은 "이대로 살아나지 않으면 이 주식들로 우리 무덤을 덮자"는 결연한 말로 가치투자 원칙을 지켰다.


결과적으로 2년 연속 꼴찌를 했던 A사의 수익률은 이후 급반등했고 이후 수년간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장과 운용본부장 역시 가치투자의 최고 콤비로 인정받으며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한때 10조원 가까이 돈이 몰리는 등 잘 나가던 B운용사는 지난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역시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B사의 포트폴리오들이 힘을 쓰지 못하자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한 해 동안 펀드에 있던 돈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갔다.


다른 종목들은 몇 배씩 주가가 오르는데 B사가 가지고 있는 주식은 제자리걸음을 하니 고객들의 돈은 몰렸을 때보다 더 빨리 빠져나갔다. 한창 힘든 시절, B사 부사장은 가치투자 쪽의 선배인 A사 사장과 식사할 일이 생겼다.


이 자리에서 A사 사장은 과거 자신들이 2년 연속 수익률 최하위를 기록하던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운용사가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투자 스타일, 원칙입니다."


모범 정답을 들었지만 B사의 고민이 이 조언으로 바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성장주나 중소형주들이 약진하는 시장에서 가치주를 가지고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성장주와 중소형주들은 대형주나 가치주에 비해 오를 때 더 가파르게 오르기 마련이어서 소외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웬만큼 충성도가 강한 고객들이 아니면 다른 펀드는 날라가는데 내 펀드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면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업력이 짧은 B사가 느끼는 충격은 과거 A사보다 더 크기도 했다.


B사 부사장은 "솔직히 우리 전략을 계속 고수하는 게 맞나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가치투자의 큰 방향은 유지하되 일부라도 시류에 편승하는 펀드를 만들고 싶은 유혹을 참기 어려웠다. 돈이 몰리는 게 보이는데 이를 모른 체 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힘든 상황이 1년간 지속됐지만 B사는 결국 원칙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 대가는 작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이 좋아지자 펀드매니저들마저 직접 투자를 하겠다며 회사를 나갔다. 업계에서 B사를 언급할 때면 '위기'란 말이 따라다녔다.


그래도 버틴 결과 희망이 보였다. 바닥을 찍은 수익률은 회복되기 시작했고 펀드 환매도 진정됐다. 아픈 1년이었지만 과거 급성장 시절 다지지 못했던 기초체력을 더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잘 나갈 때 원칙을 지키기는 쉽다. 힘든 상황에서도 지켜야 진정한 원칙이다. 힘든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도 원칙에서 나온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