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이 한국 사회 곳곳을 흔든다. 정치권에서는 책임 공방이, 여론에서는 정부에 대한 질타가 거세다. 메르스만이 아니다. 외환위기,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건 등 다른 대규모 사건을 대입해도 스토리가 유사하다. 경고 신호를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했다가 일이 국가 전체적으로 증폭하는 사태 말이다. 메르스의 확산은 확률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낮으나 파급력이 큰 사건의 전형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미래 연구자는 이를 '검은 백조(블랙 스완)' 또는 '극단적 사건(X-이벤트)'으로 부른다. 전 세계의 여러 미래 연구자가 앞으로 검은 백조 사건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검은 백조 사건은 세 가지 속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불확실성, 복잡성, 그리고 빠른 속도다. 이러한 사건은 인간에게 익숙한 지식과 통계적 추정이 미치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불확실한 경고의 메시지를 수용하기가 어렵다. 또한 검은 백조 사건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결과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어떠한 원인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그 파급력이 시스템 전체로 전파되는 경향을 보인다. 메르스 사태와 같이 검은 백조 사건은 일단 확산을 시작한 경우 그 전파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전파에 비해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적 대응은 더디다. 사건의 전파와 인간의 대응 속도 차가 클수록 사건의 파급력은 증가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검은 백조 사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대비책은 검은 백조 사건의 속성을 다루는 단계별로 나온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다룰 예측 영역, 사건 전개 시 복잡성과 속도 차를 다룰 대응 영역, 사건의 빠른 전개와 인간의 느린 대응 사이에서 일어나는 파괴로부터 회복을 돕는 복원 영역이다. 이러한 영역을 공공정책에서 묶는다면 '선제적 정책 거버넌스'로 부를 수 있겠다.
검은 백조 사건의 예측, 대응, 복원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화재, 자연재해, 신종 전염병 등 잠재력이 큰 대형 사건을 다루는 여러 공공조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조직은 주로 사건 발생 후 대응 임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측이나 복원 분야의 전문성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공공조직의 대응 영역이 부문별로 제한되어 있기에 사건이 시스템 전체로 확산될 경우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부와 공공조직들은 경제성장기의 핵심 가치, 즉 통계적 확실성과 투입대비 성과 산출의 인과적 명료성을 중시한다. 때문에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다룰 예측과 예방 역량을 키우기 어렵다. 복원 분야는 예방 차원에서 사회시스템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정책들과 사건 발생 이후에 신속한 회복을 지원하는 체계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검은 백조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조직은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 그러한 발명은 선례가 적지 않고, 우리나라의 경제력으로 충분히 실행할 수 있다. 미국에서 비상사태를 총괄하는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나 각국 및 국제기구에서 전염성 질병을 관리하는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그러한 사례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조직들이 있다. 다만 기존의 공공정책 패러다임에 묶여 제 역량을 키우고 발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선제적 정책 거버넌스'의 발명은 이들 공공조직을 독립시켜 고유 미션에 대해 무한 권한과 무한 책임을 지게 하는 일로 시작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제2, 또는 제3의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와 공공조직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는 국민의 평가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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