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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황도현 중사'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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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황도현 중사'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 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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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바다 해군의 방어망은 철통같았다. 지난 23일 찾아간 연평도 해병대 소초는 굳건한 요새였고, 북쪽을 향한 K-9 자주포는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황도현 함'에서 만난 장병들은 참으로 듬직했다. 13년 전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일어난 남북 간 군사 충돌로 목숨을 잃은 장병 6명 중 한 명인 황도현 중사의 이름을 따 명명한 이 배에서 황도현의 후배들, 아니 또 다른 '황도현들' 그 하나하나는 황도현의 눈과 귀, 팔과 다리가 돼 바다를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


함정에는 황 중사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부모님과,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 속에서 그가 웃고 있다. 여덟살 아이가, 열 다섯 살의 소년이, 스무살의 꽃다운 청년이 웃고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그의 삶을 생각한다. 그는 왜 수병이 되려 했을까. 바다의 무엇이 이 젊은이를 불렀을까. 그는 수평선 너머를 알고 싶었던 것일까. 바다 너머 세상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그 세상을 한껏 살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삶을 생각하며 그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의 너무도 짧았던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황도현 함정에 쓰여 있는 '용기' '명예' '헌신'에 대해 생각한다. 이 젊은이가 보여준 용기와 헌신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서울의 서민 동네에 태어나 나라로부터 많은 걸 받은 것 같진 않은 듯한데, 나라를 위해, 다른 이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에게 남은 이들이, 이 나라가 보여줘야 할 용기와 명예는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어야 할까.


승전비를 세우고 추모탑을 쌓음으로써 그의 죽음은 위로를 받았으며 우리는 그를 진정 기억하는 것일까. 황도현함 앞쪽으로 펼쳐진 NLL, 그 보이지 않는 철조망을 바라보며, 세계 유일의 이 해상 대치선에서 남은 이들의 과제에 대해 생각한다.

바다는 더없이 잔잔하다. 갈매기는 공중을 노닐며 구름은 남북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평화로운 바다는 그러나 울고 있는 듯했다.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 동족 간의 미움과 미움이 맞서는 비극 앞에 '어머니 바다'는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고 있는 듯했다.


그 울음과 눈물은 무엇보다 6월에 자기 품에서 흘렸던 젊은이들의 피에 대한 애도이지만 또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 좁은 해역에 가둬두고 있는 것에 대한 비애 때문일 것이다. 서해 북단의 바다는 바다라기보다 호수처럼 보였다. 수심 10여 미터의 천해(淺海)이기도 하지만 작은 도서들에 둘러싸인 이 해역에서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었을 황도현의 꿈이 꺾인 이 바다에서 황도현의 후배들은 최선을 다해 의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젊은이들은 호수에 갇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이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쓰인 황도현함의 글귀대로 어마어마한 인생들이 이 좁은 해역에 묶여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막강한 해군이 더욱 강력해지길 바란다. 동족이지만 현실의 '적'이 돼 있는 북의 도발에 대한 응징 태세를 더욱 확고하게 갖추기 바란다. 그러나 나아가 진정한 '무(武)'에 대해 생각해 보기 바란다. 武에는 창을 멈추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건 먼저 적의 창을 꺾는 것이겠지만 더 강한 무력은 자신의 창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의 귀한 생명들의 희생을 막는 것이다. 무력을 과시하되 무력을 쓸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강한 무력은 서해를 평화의 해역으로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해군을 더 넓은 곳을 바라보도록, 더 넓은 세계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황도현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그의 꿈을 잇는 것이리라. 그것이 그에게 부끄럽지 않는 명예를 다하는 길일 것이리라.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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