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한국과 중국은 여러모로 대비되었다. 한국 정부의 서툰 대응과 달리 중국은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중국과 홍콩에서는 메르스 감염 한국인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된 91명이 즉시 격리됐다. 홍콩 당국도 한국발 홍콩행 아시아나항공 승객 주변에 앉았던 한국인 6명 등 19명을 신속히 격리했다.
중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은 2003년 사스에 유린당했던 뼈아픈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런 강제적 조치가 신속하게 가능한 것은 '공안'이라는 기구의 존재이다.
2006년께 한국 온라인게임이 중국시장을 휩쓸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중국시장 조사차 베이징에 있는 우리나라 현지 법인을 방문했다. 중국의 거대 포털과 합작법인이라 몇백 명의 사내 인력을 안고 있는 기업이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총경리(대표)는 "어제 오셨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넜다.
어제 완전 무장한 중국 공안 수백 명이 회사가 있던 건물을 포위하고 내부에 있던 사람을 전원 연행했다는 것이다. 마약 수색이 이유라고 했다. 이 건물에는 일본계 기업도 있어 한 일본인이 서툰 영어로 '아이 앰 재퍼니즈'라고 외쳤지만 총 개머리판에 얻어맞고 연행되었다고 했다.
그 대표는 중국 공안에 걸리면 절대 반항하지 말고 고분고분 지시에 응해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다. 이런 공안이 통제하는 중국에서 메르스 격리 대상자들이 '골프를 치러 갔다거나 섬에 여행 갔다'는 뉴스를 들은 바 없다.
사실 우리도 예전에는 이런 효율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경찰은 공안 통치의 주체였고 시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민주화가 된 이후에 이런 공포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공포 시스템을 대체할만한 민주적인 사회에 걸 맞는 시민의식이 부재하다는 것이 우리의 뼈아픈 고민이다.
작년 미국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된 적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에볼라 감염 환자로 확인된 라이베리아 출신 남성이 미국에 도착해 100여명과 접촉한 것을 밝혀내고 접촉자의 신원을 파악해 추적했다. 이 환자가 미국 도착 후 일주일 이상 거주했던 댈러스의 아파트 주변은 즉각 봉쇄됐고 그와 접촉했던 주민과 병원 의료진 100명을 격리시키고 감시했다.
이런 봉쇄된 상황에서 격리조치를 받던 50대 여성이 텍사스로 몰래 가서 골프를 치는 일은 없다. 에볼라 확진 환자를 진료하다 자가 격리 대상자로 분류된 의사가 아내와 함께 남미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없다. 에볼라 감염을 우려하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몸에 문제가 없다며 출장을 강행하고 홍콩에 입국할 때 감염 환자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거짓신고까지 했다면 이건 미국에서 추방될 수준의 대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은 달랐다. 메르스에 감염된 국내 첫 환자인 68세 남성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할 당시 바레인을 다녀왔을 뿐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한 사실을 숨겼다. 병원 측은 바레인이 메르스 발병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환자를 격리하지도 않고 일반 병실에 입원시키는 바람에 무려 35명이 감염됐다.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시민의식의 부재는 한국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다. 이 재앙은 올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메르스는 이미 한국사회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이나 개발도상국처럼 명령과 복종에 기반한 대응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시민의식에 기반한, 공동체를 생각하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반한 대응이다. 만일 첫 번째 환자가 자신이 사우디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첫 병원에 고지했더라면, 그래서 그 병원이 환자를 바로 격리시켰다면 지금쯤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쉬울 뿐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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